14일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최장집(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관련된 이념논쟁이 좀더 깊이 있게 진행됐다. 안기부장 특보를
지낸 자민련 이동복(이동복) 의원과 안기부 1차장 출신인 한나라당
정형근(정형근) 의원은 최 위원장의 다른 논문과 저서들을 자체 분석, 최 위원장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 의원은 최 위원장이 [한국사회 민주변혁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란 논문에서

레닌과 그람시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논문

내용을 보면 그가 학자라기보다는 사회주의 혁명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92년 1월23일자 한겨레신문 기사를 인용,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선거 및 대의제를 수단으로 해 민중이 주축이

되는 [선거 사회주의]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최 위원장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한 북한 [조선기자동맹] 성명과 관련,
{이는 최 위원장의 주장이 북한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뜻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라면서 {최 위원장의 저서는 명백히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와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최 위원장과 정해구씨가 함께 쓴 논문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을 길게 인용하면서 {두 사람은 해방 이후 8년간의 한반도 분단사의 흐름을
혁명 대 반혁명의 투쟁구도 속에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두 저자는 제주도 4·3사건과 여순사건은 물론, 북한이 파견한 남파
빨치산의 무장 전복활동마저 무장투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남한에서는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고 반혁명으로 귀결되었음에 반해
북한에서의 혁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앞에서 인용한 대목들은 북한이 73년 펴낸 [정치사전] 448쪽에서
450쪽에 걸쳐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싣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하고 있다}면서 {북한 공산정권과 동일한 혁명관을 소지한
인사가 대통령의 최측근 자문인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며
국가보안법 저촉 여부를 밝혀달라고 했다.

한나라당 박성범(박성범) 의원은 {최 위원장의 이념논란이 국민으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이 뭔지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도움을
줘야 할 공인의 역사관에 이념적 문제가 제기됐다면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종필(김종필) 총리는 답변에서 {거취 문제는 본인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고
전제한 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이 세계 적화(적화)를 위해 지구촌 각처에
침투했고, 6·25는 한반도에서 북쪽 공산군이 쳐들어온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 없다}며 {이해할 수 없는 수정사관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라고 못박았다.

강인덕(강인덕) 통일부장관은 {최 위원장의 저작을 정독하지 못하고 한두 편의
논문만 읽고 답변하기 곤혹스럽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자, 국민회의 의석은 {장관 답변이 그 게 뭐야}라는 항의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강 장관은 {최 위원장의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론이
북한의 혁명관과 동일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유권해석]을
피해가면서도 {최 위원장이 오해받을 용어를 여과없이 썼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80년대 전후 이른바 진보적인 시각이 만연했는데 인기 영합에
급급하지 않았나, 경솔한 부분이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국민회의에서는 최 위원장 방어에 나서, 김성곤(김성곤) 의원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최 위원장은 민족적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고 했고, 임복진(임복진)
의원은 {사상논쟁이 정쟁의 쟁점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총리는 추가 답변에서 {세계적 탈이데올로기 시대조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전의 절지(절지)에 남아 있고,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민회의 유선호(유선호) 의원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질문이 끝난 뒤 의사 진행
발언에서 {정 의원이 안기부 재직시 야당 탄압에 앞장섰고, 인권 탄압과
불법공작을 자행했으며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불법 유인물을 선거판에
살포해 야당 후보 낙선공작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나라당 권기술(권기술) 의원은 {동료 의원의 대정부질문에 대해
인신공격적 발언을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동료의원에
대해 [불법행위를 지적할 자격도 없다]고 비방 모욕한 것을 사과하라}고 했다.
이날 최 위원장 사상논쟁에서는 [1여(여)2야(야)] 구도가 펼쳐져 자민련 이동복
의원이 최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서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잘했어}라고 호응한
반면, 국민회의측에서는 {잘하긴 뭘 잘해}라고 비난했다.

(* 김연광·yeonkwang@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