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설의 미학으로 6·25 무렵 두 가족 그려 ##.

♧1952년 8월에서 1953년 12월이면 한국인들에게 고통과 절망의 시기
였다. 45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분단'
이란 현실은 우리 삶을 구속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말할 것 없고 무
의식마저도 옥죄고 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아름답다고 역설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계의 이단아(?) 이광모(38)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름다운 시
절'(11월 21일개봉).

열두 살 동갑 성민(이인)과 창희(김정우)의 성장사와 가족사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슬픔과 처절함이 배어있
다.

생존을 위해 미군 병사에게 몸을 바치는 창희 어머니(배유정),그 '몹
쓸 일'을 주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성민 아버지(안성기), 한때의 불장
난을 사랑이라 여기고 사생아를 밴 철없는 누이(명순미), 시대의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내는 선생님(오
지혜), 모멸감을 참지 못해 방화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져버린 창희, 그
리고 일순간 맹목적 '빨갱이 사냥'에 빠져들었던 선한 이웃들….

그렇다면 그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뒤늦게 사는 자의 여유?
관습적인 과거의 미화? 아니, 그것은 희망의 고귀함을 기리는 노래이며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향한 찬사 아닐까. 그렇다. '아름다운 시절'은
고난과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찬가인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지
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때의 산고가 있었
기에 우리가 존재할수 있으니까. 이렇듯 영화를 떠받치고 있는 버팀목은
역설의 미학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응시의 시선은 따라서 필연적 선택이다. 단 한 차례
도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와 길게 찍기(롱 테이크)는 그 시선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 수단들이다. 아울러 극도로 절제된 클로스업과 심도 촬영, 10
여번 등장하는 중간 자막, 각기 상이한 레벨로 녹음된 다층적 사운드 등
을 동시에 고려하는 순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미덕인 문맥성
(contextuality)과 입체성이 단연 두드러진다. 다분히 감성적·감상적·
극적인 이야기 또한 철저하게 해체(deconstruction)돼 버린다.

특히 후경 처리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전경과 중경보다도
더 중요할 때가 왕왕 있다. 무심코 지나칠지 모르지만, 그 경우 후경을
놓쳐서는 영화의 정보와 의미를 올바로 읽어낼 수 없다.

강변에 미군복이 화면 가득 걸려 있는 장면이 좋은 예다. 카메라는
멀찌감치서 성민의 배다른 삼촌(유오성)이 미군복을 빠는 모습을 비춘
다. 성민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고 그에게 다가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다. 그때 더 멀리 저 뒤편에는 창의 엄마가 하얀 속옷을 빨아 널고 있
다. 군복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색의 대비로 그 속옷들과 창희
엄마의 움직임은 눈길을 붙든다. 영화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감동적
인 라스트신과 더불어 영화의 입체성과, 절망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희망을 표현하는, 길이 기억될 장면이다.

그저 이야기만을 쫓아가더라도 '아름다운 시절'은 즐길 거리가 충분
하다.

혹 지긋이 나이가 든 관객들이라면 노스탤지어만으로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길 게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영화의 참맛을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같다. 평범한 여느 영화와는 너무나도 다른, 이 영화만의 짙은
맛은 세심한 관찰과 끊임없는 성찰을 겸비하고 꼼꼼히 영화 스타일을 읽
을 때 우러나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아름다운 시절'은 좀처
럼 만나기 힘든 작품으로 비상할 게다. 낯설고 독창적인 스타일이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필수 요소라는 것, 영화의 형식이 곧 내용이
라는 그 흔한 주장이 적확한 진술이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