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 로트만은 구조시학 강의, 예술 텍스트의 구조, 시 텍스트의
분석 같은 저서를 통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학자이다. 이번에 번역
된 그의 '문화기호학'(문예출판사)은 기호학 이론을 문화 현상에 적용
한 일종의 문화 이론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본래 제목은 '마음의 우주'(Universe of the mind)이다. 이
를 통해 우리는 기호학의 난제로 남아 있던 마음, 정념, 기억 같은 표
상 능력과 문화의 관계를 로트만이 자신의 주된 관심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의 역동성과 관련하여
첫장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변함없는 정보량을 발신하는 '나─그/
그녀'라는 커뮤니케이션 모델과 정보의 질적인변화를 가져오는 '나─나'
커뮤니케이션(일명 자가 커뮤니케이션) 모델 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다
룬 점이다.

여기서 로트만은 일반적으로 현대 유럽 문화는 나─그/그녀 커뮤니케
이션으로 지향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는
과연 어떠한 모델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반추한다.

세미오스피어(기호학적 공간)라는 개념으로 묶여 있는 두 번째 장에
서 로트만은 문화적 공간 세계와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세미오스피
어는 문화발전의 결과이자 조건이다. 각각의 기호학적 공간의 내부는 차
이, 경계화, 이질성 등을 통해 유표화되지만, 다시금 대화적인 변경을
통해 새로운 세미오스피어의 창출로 연결된다. 특히 각 기호학적 공간
사이에 놓여 있는경계 개념이 단순한 절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와
통합이 공존하는,따라서 2개 국어적이며 다국어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로
트만의 시각은 매우 이채롭다.

마지막 세 번째 장은 역사와 기호학을 접목시킨 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대단히 낯선, 그러나 서구에서는 구성주의적 사유를 통해 널
리유포되어 있는 시각이 로트만의 분석에서 재발견된다. 예컨대, 사실이
라는 것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재구성된 상대적
인 것으로서 일종의 텍스트로 다가오며, 이렇게 텍스트의 형식을 띠는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현재의 메커니즘과 상호 작용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로트만의 분석 시각에서 우리는 러시아 학자들의 고유한 사유, 즉 거
대한 보편자의 형상에 의해 작은 개별자들까지도 그 영향을 받고 또한
서로친족 유사성을 갖는다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것
은 우리는 마트료시카(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차례로 들어 있는 러시
아민속 공예품)이며, 무한한 대화들 속의 참여자들이며, 모든 것의 닮은
꼴임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로트만은 이러한 형이상학
적 사유를 자신의 문화 분석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구조주의나 기호학은 지나치게 도식, 모델, 코드 등에 의존하고 있다
는 비판을 받지만, 그럼에도 로트만의 시각은 문학을 뛰어 넘어 역사학,
문화과학, 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과의 소통을 제시해 주며
또한 우리의 문화적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 최문규·연세대 독문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