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의 내각제 목소리가 요즘 부쩍 높아졌다. 공동정권 출
범 초기에만 해도 "경제위기를 넘기기 전에야 어떻게 개헌 이야기를 꺼
낼수 있겠나" 하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경제위기도 채 넘기지 않은 요
즘 왜 갑자기 내각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일까? 심지어 그는 "5.16
혁명하던 마음으로 내각제를 추진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토로했
다고한다. 도대체 무엇이 JP로 하여금 그토록 모진마음을 먹게 했을까?.
JP 본인이 아니고선 그 까닭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JP와
자민련이 일종의 불확실성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되
기는한다. 이 추측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정황은 물론 없다. 국민회의
도 지금으로선 JP나 자민련에 대해 그런대로 잘 대해주고 있다. 그런데
도 자민련 안에는 일말의 초조감과 위구심 같은 것이 깔려있을 가능성
은 있다.
자민련은 우선 국민회의가 내각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해줄까 하는데
대해 확고한 심증이 없는 것 같다. 국민회의의 전국 정당 지향, 사정
드라이브에 따른 DJ 권력의 일방적 압도, 여권 성향 일부 논자가 말하
는 '자민련 빼고'의 민주 대연합론- 등등의 현상들도 자민련에 대해
'어쩐지 불안해'를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자민련으로서는 특히 국민회의쪽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썩 반기
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선거법으로는 자민련이 영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한나라냐 국민회의냐?"의 양자택일 심리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JP와 자민련이 요즘 들어 갑자기 보
수색과 내각제를 의식적으로 띄우는 것은 바로 그런 일련의 소외 의식-
"이러다가 우리가 혹시 낙동강 오리알?" 하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추측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짐작은 물론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
일지는 알 수 없어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내각제 문제에 대한 각자의
최종적인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양측이 어떻게 결론지을 것인가를 국민
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는 한가지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김대
중 대통령과 국민회의가 만약 내각제를 하기로 할 경우엔 물론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각제를 하지 않기로 할 경우엔 그것
역시 끝까지 자민련과의 '설득에 의한 합의'로 해야지 일방적 파기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내각제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김 대
통령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대통령이 돼선 안되겠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의 마음이 똑같은 대통령상을 '국민
의 정부'는 만들어야 한다.
둘째로는, 김 대통령이나 국민회의는 이른바 '보수'와의 제휴를 통
한 보편성있는 '개혁'으로 나가는 것이 튼튼하지, 그것을 깨는 방식의
'개혁'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민주 대연합'이나 '개혁 대연합' 쪽의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딱히 자민련이 '보수'의 바람직한 대표라고 말할
수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만약 국민회의가 자민련 등 '보수'와의 동행
을 차버리고 그 어떤 '개혁 대연합'쪽으로 질주할 경우 '개혁'의 기반
은 그만큼 줄어들 우려가 있다.
그리고 '개혁' 그 자체가 '국민적인 것'으로부터 '당파적인 것'으로
좁아질 우려도 따른다. 지금 우리 사회엔 DJ가 '보수'를 안고가는 개혁
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보수'를 따돌린 '개혁'을 해야 하느냐로 의견
이 첨예하게 갈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도 있는 엄청난 논쟁점이다.
이 논쟁에서 필자는 DJ가 전자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절
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국민적 컨센서스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도 '개혁'에 인색하지 않겠다는 '계몽된 보수'로 거듭나
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