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금석문이 한 학자의 집념에 의해 원형 그
대로 자료집에 담겼다.

성균관대 부총장 조동원(58·사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금석문대계
(한국금석문대계)'(원광대출판국) 제7권 강원도편을 발간, 20년에 걸
친 전국 금석문 정리작업을 마무리했다.

돌이나 금 속에 글씨를 새긴 금석문은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을 말

해주는 1차자료로 역사연구뿐 아니라 서예나 회화의 변화를 아는 데도

중요하다.

우리 나라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금석총람'(1919년:
5백45종)과 허흥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가 편집한 '한국금석전문'
(1984년:6백49종)' 등 자료집이 있지만 모두 활자본이기 때문에 오-탈
자를 피하기 어려웠다. '한국금석문대계'는 이 때문에 금석문 탁본을
축소하여 수록한 후 이를 해독하여 싣고 해제를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1979년 전라남북도편으로 첫권이 발간된 '한국금석문대계' 전7권에
실린 금석문의 수는 모두 7백82종. 시대별로는 선사시대 3종, 고구려
5종, 백제 8종, 신라 79종, 고려 1백5종이며 조선이 5백82종으로 가장
많다. 이 중에는 구례 연곡사의 현각왕사비편, 황희-이항복의 신도비
등 조 교수가 새로 찾아낸 금석문도 상당수에 이른다.

조 교수는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원로한학자 임창순씨의 금석문 강
의를 들으면서 이 분야에 눈을 떴다. 68년 성대 박물관 연구사가 된
그는 5년간 전국을 돌며 탁본전문가가 됐다. 74년 원광대에 부임한 조
교수는 당시 박길진 총장 지원하에 전국 금석문을 탁본하고 영인하는
대장정에 들어갔다.그가 그동안 탁본한 금석문은 모두 1천2백여종.'대
계'에는 이 중 학술적으로 중요한 것을 골라 수록했다.

"여름방학이면 학생들과 함께 꼬박 한달 동안 탁본에 매달렸습니다.
대부분의 금석문이 산골에 위치하고 당시 도로가 비포장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2∼3개 탁본하면 고작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지도와 배낭
을 들고 산 속을 헤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의 신고로 경찰과 군
인의 심문을 받은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조 교수는 탁본과정에서 금석문의 보존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역개발에 의해 망가지는 것은 물론, 보존을 위해
설치한 비각이 오히려 화재 등으로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또 훈련받지 않은 사람의 서툰 탁본도 훼손을
심화시키는 원인이었다. 조 교수는 "국가기관에서 금석문을 체계적으
로 조사한 후 실물크기로 영인하는 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
했다.

조 교수의 앞으로 꿈은 북한지역 금석문을 조사하는 것. 북한 금석
문은 '조선금석총람'에 1백20점이 실려 있고 해방후 고구려 금석문이
10여종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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