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말 저항문화의 메카였던 미국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를 다
녔던 미국 처녀가 지난 70년 "여성이 해방되고 전세계가 해방돼야 한
다"는 생각을 가슴에 가득 안고, 미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었
다.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생전에 본 적도 없는" 어마어마한
남존여비 풍습이었다. "인류학도는 다른 문화를 판단하기에 앞서 이
해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여성해방론자로서 갖는 심적 갈등이 너무 컸
습니다.".

다음해 서울 동대문구에서 본 '이문동 할머니'의 굿판은 이 처녀
에게 또 다른 혼란을 일으켰다. '어떻게 여기선 매우 강력한 영향력
을 행사하는 주인공인 무당이 여자이고, 남성은 주변적일 수 있는가.'
이 의문은 당시 미국 처녀이자 현재 뉴욕 소재 '미국 자연사박물관'
의 동양문화 책임자인 로렐 켄달(Laurel Kendall·한국명 경달래) 박
사가 한국의 무속과 여성생활, 제의, 근대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평
생 연구의 대상으로 잡게된 발단이 됐다.

'왜 무당은 대부분 여자인가'에 대한 그녀의 설명은 이렇다. "사
제, 부자간과 같이 사회내 모든 관계에서 적절한 예를 강조하는 유교
사회에서 가정내 부조화와 같은 사적인 문제는 여성들이 무당을 찾아
가 조용하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털어 놓으려면 대상
은 여자여야 했지요. 유교가 남성 위주의 민족과 사회를 대상으로 했
다면 무속신앙은 집안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켄달은 76년부터 2년 동안 경기도 양주군에서 40대 무당인 '용수
엄마'를 따라 다니며, 본격적인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현장답사에 들
어갔다. '용수엄마'에게 질병과 가정 문제를 논의하러 오는 마을 여
인들과 굿이나 푸닥거리는 모두 연구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수
(무당이 전하는 죽은 사람의말)를 받으면서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얘기들을 죽은 친척과 주고 받는등 '확실한 경험'도 했다"는 것.

켄달이 지금까지 인터뷰한 무당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 "어렸
을 때 '홍수막이'(그해의 액운을 막기 위해 정월에 하는 무당굿) 같
은 것을 경험해 본적은 없지만, 용수엄마는 최근 제게 '네가 한국말
만 좀 잘했어도 만신(무당)이 될 수 있었을텐데…'라고 하더군요."이
용수엄마와의 인연은 이제20년이 넘는다. 그새 용수엄마가 모시는 신
중 하나인 그녀의 죽은 남편은 켄달이 최소 1년에 한번씩 방한하면서
가져가는 '시바스 리갈' 위스키를 특히 좋아해, "진작 이런 술을 내
놓았어야지"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

물론 무속만이 켄달의 한국학 대상의 전부는 아니다. 무속 연구
시절 "서른이 다 된 처녀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던 그녀는 83년에는 경기도의 한 북부 도시에서 한동안 살면서
한국인들의 서양식 결혼과 전통혼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결혼의
의미, '예단'과 같은 전통 풍습의 의미가 점차 변질되는 과정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96년에는 '한국의 결혼(Getting Married in Korea)'
이라는 저서를 버클리대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켄달과의 대화에선 줄곧 "진짜 '신기'를 느꼈는지, 한국
무속을 믿는지"가 궁금했다. 그녀는 "세속적이라, 모든 종교를 존중
한다"고 말한 뒤, "무속 신앙은 기독교의 절대적인 '믿음'과는 다르
지만,굿의 고객이기도 했으니까 내겐 종교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
다.

"한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까막산'이란 곳에서 논문
의 성공과 좋은 남편을 만나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었죠. 앞의
두 소망은 곧 이뤄졌고, 89년에 한국 아기(현재 9세)를 입양했으니까
다 이뤄진 셈이죠.".

켄달은 세번째 소원이 이뤄진 데 대해선 이렇게 덧붙였다. "컴퓨
터 컨설턴트인 남편은 한국과 인연이 깊어 지금도 한국관련 교육용
필름을 제작중이고, 저는 한번도 '한국을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
으니까 당연한 일이기는 했어요.".

.

로렐 켄달 박사 약력
▲69년 UC 버클리대 인류학과 졸업
▲70∼72년 평화봉사단원 한국 근무
▲76∼7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한국무속 현장답사
▲79년 컬럼비아대 박사 취득(문화인류학)
▲87∼89년 '아시아학 저널(Journal of Asian Studies) 부편집장
▲83년부터 미국자연사박물관 동양문화 책임자
▲98년 1월부터 컬럼비아대 초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