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66년)'와 함께 위대한 영화철학자 잉그마르 베르히만
작품세계 최고봉을 이루고 있는 '침묵 3부작'이 비디오로 모두 출
시됐다. 성 베네딕도 시청각(02-279-7429)은 최근 '겨울빛(63년)'
과 '침묵(63년)'을 내놓음으로써 작년 출시된 '거울을 통해 어렴풋
이(61년)'와 함께 3부작을 모두 국내 팬들에게 소개하게 됐다.

'겨울빛'에는 목사 아들로 자랐던 베르히만의 자전적 체험이 녹
아있다. 주인공 토머스 목사가 처한 상황은 신이 사라진 시대의 절
망을 함축한다. 목감기는 날로 악화되어 가고, 사랑하는 아내가 죽
자 신앙도 잃어버린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상담을 청해온 요나스에
게 목사로서 신을 부정하는 말을 함으로써 결국 자살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종소리와 찬송가로 시작하지만 곧 교회의 어두운 실
내 그림자 속에 파묻히며 절절한 부정의 몸짓을 그린다. 예수가 십
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며 신의
침묵에 대해 느낀 절망은 그대로 토머스의 절박한 실존적 물음이
된다.

'침묵'은 에스터, 안나 자매와 안나의 아들 요한의 기이한 여행
을 그리고 있다. 어느 호텔에 투숙한 에스터는 극도의 무력감과 소
외 속에 뿌리 잃은 식물처럼 시들어가고, 안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침대로 끌어들이며 고독에 바탕한 위악적 욕망으로 파멸해간다. 거
대한 혼돈의 소용돌이 같은 호텔은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과도 같다. 에스터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이시여, 저를
집에서 죽게 하소서"라고 외치지만,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낙원을 뛰쳐나온 현대인에게 더 이상 안식처는 없기 때문이다.

'침묵' 3부작은 뒤에 만들어진 작품일수록 점점 더 끔찍한 지옥
도를 그려낸다. 하지만 일부 평자들 견해와는 달리, 이 3부작 마지
막 장면들엔 아직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나직이 읊조리는 목소리
가 담겨있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비로소
대화를 시작하고, '겨울빛'에서 토머스와 그를 사랑하는 마르타는
단둘이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떠나온 이모 에스터가 남긴 편지를
요한이 펼쳐보는 장면이 '침묵'의 마지막이다. 여기서 베르히만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가늘고 성기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한 구원
의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과 삶에 대
한 근원적 물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 이동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