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이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30년간 반공과
경제개발을 기치로 단결해온 아세안이 집안싸움에 휘말리고 있다. 아
세안 9개 회원국은 지난해 환란과 연무의 책임 논쟁에 이어, 올해는
안와르 말레이시아 부총리 해임과 리콴유(이광요) 싱가포르 전 총리
의 회고록을 놓고 잡음을 내고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안와르 전 말레이시아 부총리 구속 이후
마하티르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
통령은 최근 안와르의 딸 누를 이자와 만나 말레이시아 지도층의 부
패를 비판하고,안와르가 국민을 위한 투쟁을 굽히지 말 것을 촉구했
다.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말레이시아 방문을 전격 취소, 친구
인 안와르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에 대해 마하티르는 16일 콸라룸푸
르 주재 필리핀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한편, 11월로 예정된 인도네시
아 방문도 취소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도 지난 9월 리 전 총리의 회고록 출
간 직후 싱가포르 공군기의 말레이시아 영공 진입을 제한하는 등 갈
등을 빚고 있다. 지난 65년 싱가포르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의 부도덕
성을 고발한 책 내용과 관련, 말레이시아는 자국 영공에 들어오는 싱
가포르 공군기에 대한 포괄적인 관제 허가를 폐지했다. 커지는 회원
국간의 갈등은 오는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있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개최에도 그늘을 만들고 있다.
아세안의 내부 마찰 배경은 정치 혼란과 경제 파탄이다. 내년 총
선을 앞둔 하비비는 메가와티 민주당(PDI) 총재 등 야권의 도전을 받
고 있다. 또 국민의 3분의 2가 빈곤층으로 추락했고, 수백만 가구가
하루 한끼로 연명중이다.
필리핀은 2001년까지 1천2백만 실업자를 예상하고 있고, 미얀마는
민주화투사 아웅산 수지의 임시 정부 구성, 태국은 미얀마 난민의 불
법 입국 등으로 정세가 어지럽다.
물론 아세안이 당장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취약한 민주주
의와 왕정, 군사 독재가 뒤섞여 아세안의 화합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
렵다. 또 최소한 경제 위기가 한풀 꺾일 때까지는 회원국간의 불화가
계속될 전망이라는 분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