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어요. 승복이는 입에서 귀까지
거의 반가량이나 찢겨 이빨이 드러나 보였어요. 네살배기 여동생은 두개
골이 부서진 채 뇌가 튀어 나와 있었고…. 승복이 어머니는 더 처참했지
요. 젖가슴이 대검으로 마구 찔려 있었어요.".
30년전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한 마디 말때문에 무장공비로부터
처참하게 학살당한 당시 아홉살 난 이승복군과 가족 3명의 시신을 처음
으로 사진촬영한 김진우(63·현재 원주시 거주)씨. 당시 진부면에서 사
진관을 운영하다 학살 다음날 현장 사진을 찍었던 김씨는 26일 "교통사
고, 시체해부 사진 등을 숱하게 찍어 비위가 강했던 나도 승복군과 가족
시신을 촬영한 후 3일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30년이 지난 지
금도 참혹하고 비참한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몸서리쳤다. 김씨는 당시
약 3년간 조선일보 진부지국장이었다.
그러면 68년 12월9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당시 진부면) 계방산 기슭에서 밭을 일구며 순박하게 살아가던 승복군
가정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학살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승
복군의 형 이학관(45·당시 15세)씨는 30년전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윗방에서는 어머니가 메주를 쑤고 계셨고, 사
잇문(쪽문)으로 연결된 아랫방에서 나는 옥수수를 다듬고 있었죠. 같은
방에서 승복이는 아버지가 짜준 책상에서 숙제를 하고, 두 동생은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누가 찾는 소리가 들려요.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줄 알
았죠.".
그러나 동네 주민의 이삿집을 나르러 간 아버지 이석우(당시 37세)
씨 대신 방문을 열어제친 사람은 총을 든 낯선 사람들이었다. 윗방과 아
랫방에 각각 2명,3명씩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섰는데 당시는 군인(국군)
으로 알았지 공비인줄은 생각못했다고 한다.
"아랫방에 들어온 공비 한 명이 승복이가 보고 있던 책장을 넘겨보
더니 '연필이 어디서 났니' 하고 물어 승복이가 '샀어요'라고 대답해요.
몇 번 이런 저런 말이 오고 가더니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하
고 물어요. 승복이는 '우리는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대
답했어요. 그 순간 공비가 '야'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리니까 문 가까이에 서 있던 놈이 칼을 들고 승복이 입을 팍 찌르
더라구요.".
학관씨는 동생 승복이 입에 칼이 박히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서면
서 옆에 서 있던 공비를 밀쳤고 그 순간 다른 공비가 학관씨에게 칼부림
을 시작했다. 칼날이 머리통으로 향하자 필사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으나 손등에도 사정없이 칼날이 꽂혔다.
"피가 뿌려지고 바로 옆방에서는 어머니가'사람살려' 소리치고….
그러자 잠자던 두 동생들도 깨어나 울부짖기 시작했어요.".
공비들은 막 잠에서 깬 승복군의 일곱살난 남동생 승수와 네살난
여동생 승자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막내를 벽에다 패대기를 친 후 남
동생도 같은 방법으로 집어 던졌다.
수 없이 칼에 찔려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학관씨를 공비들은 죽은
것으로 판단, 쓰러진 다른 가족들과 함께 퇴비장쪽으로 옮긴 다음 거름
더미를 위에덮었다. 학관씨는 그후 바로 아래 최재복(74년 사망)씨의
집으로 가 잠시머물다 최씨 가족과 함께 집에서 1㎞쯤 떨어진 최순옥(66)
씨 집으로 죽을 힘을 다해 피신했다. 승복군의 먼 친척되는 최씨는 "학
관이가 방으로 들어 오는데 여기저기 칼로 찔려 숨을 내쉴 때마다 등에
서 핏덩어리가불쑥불쑥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평소 총명한 승복이가
궁금해 '승복이는 어떻게 됐노' 하고 물으니 학관이가 '나는 안 그랬는
데 갸는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입이 째져서 죽었을 거예요'라고 말하더
군요.".
최씨는 이어 새벽에 도착한 공수부대원들이 사건현장을 안내해 달
라고 해 최초로 승복군과 가족의 시체를 보게 됐지만 참혹한 모습에 치
를 떨었다.
"어린애들이 글쎄 머리가 깨져 오송오송(물렁물렁)하더라구요. 승
복이는 입가가 다 찢어졌고…. 방에는 피가 질퍽질퍽했어요. 악독한 놈
들, 저희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화전민으로 살림이 어려우나 단란한 가정'에서 '학습태도가 바르
고 열심히 노력한' 이승복군(승복군의 학교 생활기록부 기록)과 그 가
족은 30년 전이렇게 숨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