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에 사는 민철(9)이는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자주 그린다. 수염투성이 꺼칠한 피부, 아내 잃은
슬픔에 술로 지새다 돌아갈 때의 초췌한 얼굴…. 어머니 얼굴을
모르는 민철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어머니 얼굴' 대신 그렸다가
담임 선생님을 펑펑 울게 만들었던 그 모습이다.

"공 차기나, 그네 타는 모습을 그리면 어떠냐"고 보육교사가 물으면,
민철이는 "어린이날 왔던 삼촌들은 언제 와"하고 묻는다.
요즘은 다른 아이들도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특히 부모있는 아이들은 축구하다가 공을 짓누르거나, 그네를 발로
차며 쌓인 그리움을 엉뚱하게 터뜨리기도 한다. 보육사들은
"부모들이 '한달에 한번은 꼭 찾아오겠다'고 서약서까지 썼지만,
실제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76명 어린이가 모여 사는 상록보육원은 작년 추석만해도 개인과
후원단체를 합쳐 25군데에서 찾아왔다. 올해는 아직 한 곳도 없다.
"퇴직을 해서…" "사업이 부도나서…" 등의 이유로 당분간은
힘들겠다는 후원중단 전화만 줄 잇는다.

부청하(55) 원장은 "올들어 후원금은 30%나 줄었는데,
원생은 16명이 늘었다"며 "겨울이 오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거리 노숙자와 실직자에겐 또 하나의 고통일 뿐인 'IMF 추석'. 성금과
후원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명절이지만, 아동-노인-장애인시설은
전없이 썰렁하다. 한국복지재단 노시선(노시선·54)국장은 "기존
후원자 수는 작년보다 33%, 신규 후원 신청자도 46%나 줄었다"고
했다.

전국 1백89개 장애인시설에 후원금을 보내는 장애인시설협회도 매달
후원자가 4백∼5백명씩 떨어져 나간다. 김종민(33)
기획조사과장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까지 겹쳐 후원자가 4천명도
안된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관심까지 끊기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