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은 17일(현지시각) 본회의에서 클린턴 행정부가 요청한 99
회계연도 대북 관련 예산 3천5백만달러 전액을삭감했다. 봅 리빙스턴
하원세출위원장이 지난 9일 대외활동 예산법안의 수정안 형식으로 제출
한 대북 예산 삭감을 승인한 것이다. 이 수정안은 흔히 '삭제(Strike)
조항'으로 불리운다.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로미 예산이 갈 수
없도록 관련 문구들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부족한 중유재
원 마련을 위해 대외원조 기금이 전용된 점을 감안, 내년도에는 KEDO로
이런 예산 전용도 안된다고 못박은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으로 최종 확정되려면 상-하원 합동심의와 클린턴 대
통령의 서명 절차가 남아 있다. 미 정부는 상-하원 심의 과정에서 이
조항이 대폭 완화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상원 역시 지난 2일 북한이
더이상 핵무기의 획득-개발을 추구하지 않고 미사일의 수출 활동을 하
지 않는다는 조건이 충족됐음을 대통령이 입증할 때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수정안을 채택했다. 의회가 대북 예산 삭감안을 고집할
경우, 클린턴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내용대로 미 정부의 예산 자체가 삭감된다면 사실상 94년 미-북
제네바 핵합의는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 미 정부가 요청한 3천5백만
달러는 미국의 의무사항인 연간 50만t의 대북 중유 조달에도 턱없이 부
족한 액수다. 부족분은 국제사회의 기여 형태로 메워졌는데, 최근 북한
의 도발적 행태가 거듭되면서 이 또한 무척 어려워졌다.

미 정부는 의회 설득에 총력을 쏟고 있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 책
임을 미국이 질 수는 없다"는 것과 '제네바 합의 파기=한반도 위기 재
연'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이런 행정부의 설명을
거의 믿지 않는눈치다. 다수당인 공화당은 94년 당시부터 '잘못된 합의'
였다는 입장이었고, 4년 동안 북한에 중유와 식량 등을 줘왔지만 변화
와 개혁은 커녕 지하 핵시설과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만 거듭되고 있다
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클린턴 성 추문 이후 한층 경화된 행정부와
의회간의 관계로 인 해 의회설득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