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조사국(CRS·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소속 래리
닉시(58) 연구원의 하루는 대개 남-북한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나온
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 공보원(USIA)등이 제공하는 현지 주
요 문서들의 영문번역 서비스인 「FBIS」를 이용, 아시아에서 발행된
각종 정부간행물과 신문-잡지 등을 보면서, 전문 분야인 「아시아 워
치(Watch)」에 돌입하는 것이다.
CRS는 쉽게 설명하면 미 의회 직속「싱크탱크(Think Tank)」라고
할 수 있다. 직원 7백여명 중 3백여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의원들의
질문과 자문에 응하고, 사안마다 필요한 정책 건의 또는 참고 자료를
발간한다. 현재 CRS에서 한반도 등 동아시아 분야의 전문 분석가로 일
하는 사람은 6∼7명 정도다.
CRS는 의회의 백과사전 같은 존재다. 닉시의 방은 잠시도 쉬지 않
고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로 가득하다. 의회 보좌관들이 당장 궁금한
내용들을 확인하는데, 가장 편리한 방법이 CRS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게 전화를 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금강산이 뭐 하
는 곳이냐』『어떤 한국 기업들의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느냐』는 등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들만이 아니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언론인
들과 학자들도 한반도 관련 기초 자료를 구하거나 의회 입장등을 물을
때면 닉시를 찾곤 한다.
닉시와 한국의 인연은 66년부터 시작됐다. 조지타운대학 국제관계
석사와 역사학 박사를 받은 닉시는 직장을 찾던중 63년 미 상무부에서
아시아 통상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중 보다 정
책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CRS로 자리를 옮겨 32년동안
「한반도 관찰」일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한반도는 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는 격동의 지대」였다.
초년 연구원 시절때 발생한 김신조 등 무장간첩들의 청와대 습격 사건
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그리고 70년대는 유신과 카터 행정부의 주
한미군철수 문제 등 대형 이슈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
건들이 있을때마다 닉시는 미 의회의 입장 정립을 위해 한반도 문제에
몰두하고 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79년9월.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를 맞기 직전이었는데, 주한미군 철수 문
제로 3여년간 씨름한 상태에서 한국 상황을 직접현장 관찰하려는 목적
에서였다고 한다. 이런 경험들 탓에 닉시는 웬만한 대형 사건에도 크
게 놀라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먼저 사건의 배경과 향후 한반도에
미칠영향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직업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닉시는 지금까지 약 25회 정도 한국을 찾았지만, 아직 북한 방문기
회는 갖지 못했다. 그러나 매일처럼 북한 관영 매체들과 선전문을 읽
어온 탓인지, 북한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북
한은 주기적 도발을 필요로 하는 체제』라며『한-미 양국은 앞으로 이
같은 도발 행태에 대한 현명한 대응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최근 북한의 장거리탄도체 발사 실험 등으로 의회 분위기가
상상을 넘을 정도로「강경해졌다」며, 『이번 예산심의과정에서 클린
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의회 지지를 얻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
망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앞으로 미 외교가 당면케
될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닉시본인은 어떤 특정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CRS
는 선거 등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전문적 분석 및 입법 지원활동을
하는 비정치적 기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은 「아시아 장식물」들로 가득하다. 대형
아시아 지도는 물론이고 한국의 탈고 일본 전통 인형, 심지어 뉴욕타
임스지에 실린 김정일 전면 광고까지 벽에 걸려 있다.
○약력.
--1940년 1월25일, 미 인디애나주에서 출생
--버틀러대학 학사, 조지타운대학 국제관계석사 및 역사학 박사
--미 상무부 아시아 통상 담당(63∼66년)
--미 의회조사국 아시아 전문연구원(66∼현재)
--민간 컨설팅 회사인 「정치 위험분석 서비스(PRS)」선임 고문
(* 워싱턴=박두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