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재미동포 사진작가 한분이 송광사를 다녀와서 이런 이야기
를 들려주었다.
"나는 어려서 부모님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우리네 군불
땐 온돌방 맛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절에서 군불 땐 온돌방에서
잤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유년 시절에 그런 적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이런 현상은 내 피가 나보다 먼저 기억하고
있기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지 않나 생각되네요.".
내 경험과 내 살갗이 느끼는 것 말고 선대로부터 유전 받은 피가
기억하는 것, 이런 것을 나도 최근에 체험하였다. '대한민국 50년--우
리들의 이야기'가 잘도 모아져 있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였다.
나는 사람이 너무 밀려든다고 해서 아침 10시 개막하자마자 표를
사서 입장했다. 내 앞에는 중년의 아주머니 다섯이 가고 있었고 내 바
로 뒤에는 너덧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은 젊은 엄마, 그리
고 그 다음부터는 초등학생들 천지였다.
나는 전 시대 검정고무신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저 고무신이 찢
어지면 기워서까지 신고 다녔던 아득한 지난 날들이 눈에 밟혔던 것이
다. 우리 집에서 사용했던 철모 두레박도 거기 있었다. 저 두레박이
우물에 빠졌을 때 거울로 햇볕을 반사해 들여 보내가며 삼발이로 건져
올리던 일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역사적인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처럼 지나간 생활의 편린조차도 챙
겨놓았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온 젊은
엄마는 60년대 서독에 파견된 광부들 모습 앞에 서서 아이한테 무엇인
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미 할아버지가 된 분에 대한 설명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여인은 순간 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밑을 누르는 것이 아
닌가.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내 콧등이 찡해져 온 일이 생겼
다. 월남파병 사진들 앞에서였다. 그것은 우리 젊은 시절의 이야기였
기 때문이었으리라. 총탄이 찢어놓은 철모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룡용
사, 그가 쓰고 있는 철모에는 '보고 싶다 울산 큰애기' '정조준 금지
구역''귀국선' '필승' 등의 낙서가 찬란하고….
나는 현실에 급급하다가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살았다는 것을 여
기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피가 먼저 알아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
다. 오송송한 복숭아 같은 얼굴로 가발을 만들고, 신발을 만들던 누이
들의 손바닥 땀이 아직도 느껴져 오는 것 같다. 어떤 명사의 강의가
이보다더 진솔하다 할 수 있을까.
나는 끝나는 길목의 이승은 인형전에서 내 앞에서 표를 끊었던 중
년의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그 분들은 눈이 남아있는 초가지붕 추녀
끝의고드름을 가리키며 고드름 맛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드름,
그시리고 맑은 맛을.
우리의 기억이 무심히 바래어져간 것을 복원하려면 그 현장에 가면
가능해진다. 아니, 고드름 맛처럼, 그 시리고 맑은 기운까지도 다시
살아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도 자녀의 손목을 잡고 가서 아득
한 저먼날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대한 교육의 유산이기
도 하므로.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피가 먼저 기억하고 있는 역사이므
로.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