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별세한 원로시인 박두진(82)씨는 '청록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박목월 조지훈이 떠난 자리를 혼자 지키다 타계한 그는 격동의 한국사 속
에서 60여년간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노래한 우리 시단의 거목이었다.
그의 시는 기독교적 이상과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 일제말 암흑기에
현실을 '주검' '무덤'으로 파악하던 그의 시는 하늘, 해, 바다 등 자연에
서 그가 동경하는 이데아를 읽어냈다. 광복 후에는 투철한 현실인식이 드
러나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그는 고비때마다 사회문제에 발언해온 대쪽같은 지식인이기도 했다.
담시 '오적' 재판땐 법정에서 김지하를 옹호했으며 노년에도 '오늘 우리
문학의 병은 사상적 도피현상과 비평의식의 결여, 무내용한 언어유희와
말초'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질타했었다. 노년의 박두진은 그의 시세
계의 출발인 기독교정신과 신앙심, 그리고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로 회귀
했다.
"70이 되니 마음먹은대로 시가 좀 써지는 것 같다"던 시인은 74세에 신
작시집 '빙벽을 깬다'를 낼 정도로 열정을 보여줬다. 그는 46년 낸 공동
시집 '청록집'을 필두로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 문학전집' 등 다수의 작품집을 남겼다. 그는 특히 연세대 국문학
과 등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깡마른 체구, 단아한 얼굴로 '겉은 엄해
도 속은 그지없이 따뜻한' 스승으로서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을 남겼다.
(*김명환기자· mh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