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프랑스에서 원내 야당을 형성하고 있는 우파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비밀에 부쳐졌다. 사안이 너무 민감했기
때문이다. 안건은 "지역 의장 선거에 당선된 샤를 미용 전 국방장
관을 출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필립 세갱 전 하원의장, 니콜라 샤르코지 전 예산장관, 프랑수
아 레오타르 전 국방장관, 프랑수아 바이루 전 교육장관, 알랭 마
들랭 전재무장관 등 이날 모인 우파의 쟁쟁한 인사들이 고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집권 사회당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단합
하기 위해 지난 봄 RPR(공화국연합), UDF(프랑스민주동맹), DL(자
민) 등 여러 갈래의 우파가 모여 '알리앙스(동맹)'를 결성했고, 다
음 총선은 물론, 그전의 지방선거부터 기선을 잡자고 다짐했으나
그 이행이 말처럼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도를 여러 개 포함하는 지역의회의 의장 선거에 출마한 미용 전
국방장관(UDF 소속)은 자력으로 당선이 가망없자 극우파인 국민전
선(FN)과 손을 잡았고, 결과적으로 그는 좌파 후보를 누르고 당선
됐다. 그가 출마한 론-알프 지역은 대선, 총선 등에서 전통적으로 FN
의 세력이 강했던 곳이다.

미용씨는 전국적 영향력을 가진 지도급인데다 89년에 우파 개혁
을 주도했고, 지난 95년 대선 때는 다른 당료들의 배신에도 불구,
자크 시라크를 끝까지 지지한 공로도 있었다.

그런 그가 선거 전략상 '당선되기 위해' FN과 손을 잡았던 것이
다. 미용은 '알리앙스' 지도부의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미리
'우익'이라는 이름의 별도 정파를 결성했고, 1만6천여명의 당원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알리앙스' 5인 지도부는 2일 사지를 자르는 결
단을 내린 것이다. "극단적 이념 정당과는 제휴하지 않는다"는 '알
리앙스'의 합의서를 어겼기 때문에, 비록 미용씨가 유권자들의 표
를 모을 수 있는 중량급 정치인이고, 원내 의석이 금처럼 귀해도
출당 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여소야대를 뒤집기 위해 어떤 짓을 한 의원이든 끌어들였던, 프
랑스 4공화국 때의 관행은 이제 몇 나라에만 발견되는 정치 화석인
셈이다.

(* 김광일특파원· ki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