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
던 시인 박노해(41·본명 박기평)는 '신세대 문화 옹호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한 혐의로 91년 검
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8·15 특사로 출소한 박씨는 조선일
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옥에 있는 동안 신세대 문화 공부를 '필사적으
로' 하면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남 함평에
서 태어나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84년 첫시집 '노동의 새벽'을 통해 주
목받은 박씨는 '노동 해방 투쟁'에 앞장선 혁명 이론가이기도 했다.

박씨는 1일 저녁 록그룹 윤도현 밴드가 출연하는 MBC '가요콘서트'

녹화장에 방청객으로 출연한 뒤 기자를 만났으나 '좀더 밀도있는 대화

를 위해' 2일 조선일보사 편집국에서 인터뷰에 재차 응했다. 아내이자

사노맹 '동지'였던 김진주(43)씨도 인터뷰 내내 동석했다.

출소 후 '서태지와 지누션 노래에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
다는데 감옥에서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어떻게 접했나.

"TV 가요 프로를 보며 신세대 음악을 들었고, 대중문화 이론서, 잡
지, 일본 패션지 '논노'까지 읽었다. 머리를 물들인 소년수들과 노래
하고 춤추며 신세대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 자신의 감성과 내 몸
의 리듬과 비트, 지성까지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미래 창
조를 위해서였다.".

-- 당신의 미래 창조와 신세대 문화가 어떻게 연관되나.

"92년 서태지 등장 이후 한국사회와 문화는 격변했다. 그것은 마치
6·25이후 우리 사회의 격변 만큼이나 큰 변화였다. 그 변화는 신세대
문화를 이해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에 '거대한 골짜기'를
만들었다. 이골짜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인
간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미래 세대에 꽃피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신세대 문화에 어떤가치가 있다고 보나.

"나는 신세대 문화의 특징을 3N, 즉 새것(New), 지금(Now), 네트워
크(Network)의 추구로 요약한다. 기성세대는 대개 신세대의 이런 특성
을 우려한다. 그러나 가령 '새것' 추구만 해도,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이 시대에 새로운 것들의 창조성을 눈여겨 보고 자기를 쇄신해
가는 태도는 얼마나 큰 미덕인가.".

-- '노동혁명가'라고 스스로를 일컫던 예전 모습과는 너무 달라 보인
다.

"군사독재 시절 그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돌려놓기
위해 나는 야수처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시대와 조건이
바뀌었다. 얼어붙은 겨울물이 봄 되면 녹아 소근거리는 개울 되어 흐
르듯,변화된 상황에 대응하며 나의 꿈을 계속 펼치겠다.".

-- 그 꿈이란 무엇인가.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하루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들과 오순도
순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절
실한이 꿈이 나의 첫 신념이었고 지금도 나를 치열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 당신은 수배중 '비폭력 노선은 민중에 대한 테러'라는 글을 쓸정
도로 급진 노선을 걸었다. 앞으론 폭력 투쟁은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인
가.

"그렇다. 김대중 정부처럼 정권교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정부라
면 과거처럼 구속당하고 고문당하고 사형받을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합법적으로할 수 있다고 본다.".

-- 정치적 투쟁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나.

"정치의 민주화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넘어
서 가치관과 생활문화와 영성의 변화를 포괄해 생활전체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

-- 당신이 과거 법을 어기며 과격하게 펼쳤던 투쟁들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군사독재 시절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벌였던
나의 투쟁은 불가피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없다. 다만, 내가
급진적 사회주의에 치우친 점, 그리고 '95년까지 혁명이 성공한다'는
등 책임질 수 없는 약속들을 남발했던 일에 대해서는 국민들을 향해
반성한다.".

-- 박씨는 "당신은 아직도 사회주의자인가"라고 묻자 "나 자신을 사
회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보다 인간 우
선, 노동의 소중함 등을 골간으로 하는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여러 진리 중 하나라고보지만, 사회주의가 절대진리가 되는 것은 반대
한다"고 말했다.
(* 김명환기자 · mh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