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황 ##.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이날밤 거사 사실을 보고 받고도 아주 한
가하고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는 우선
쿠데타의 지도자 박정희 체포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쿠데타군을 저지
하고 분쇄하기위한 대규모 진압군 동원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그 급박한 시간에도 마치지 못한 저녁식사를 끝내기 위해서 식당으
로 돌아가 한담을 하고 나타났다.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를
육본이 아니라 지구 방첩대 사무실로 잡아 여기저기 전화만 했다.이
런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의구심으로 발전한다. 즉, 박정희로부터
쿠데타지도자가 되어달라는 설득을 여러번 받아왔던 장도영은 막상
쿠데타가 일어나자 어떤 미련 때문에 과감한 진압조치를 취하지 않
았다는 의심이 그것이다. 장도영은 쿠데타군이 서울시내로 들어오기
약 여섯시간 전에 박정희의 거사를 알았으므로 마음만 먹었더라면
박정희체포, 쿠데타군의 출동저지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혁명군 작전의 기획자이던 6관구 사령부의 박원빈 중령은 이날밤

저녁식사를 바깥에서 마친 뒤 부대로 들어와서 초조한 시간을 빨리

보내려고 마작을 하고 있었다. 밤 9시30분쯤 주번사령으로부터 "서

종철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와 박 중령을 찾았는데 모른다고 했다"는

귀띔이 있었다. 박원빈은 이 시간에 사령관이 찾는다는 게 꺼림칙했

다. 몇분이 지나지않아 30사단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이 전화를 걸어

왔다. 참모장과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거사계획을 밀고하여 자신은

피신중이란 것이었다. 박원빈은 아까 온 사령관의 전화도 이와 관계

가 있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다. 이때 서종철 6관구 사령관은 이상국

준장으로부터 급보를 들은 뒤 6관구 헌병대로 나와서 상황을 파악하

고 있었다. 서종철은 또 주번사령한테 전화를 걸어 박원빈 중령을

찾았다. 없다고 하니까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빨리 헌병대로 나

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박원빈은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에

게 말했다.

"어디서 전화가 걸려오거든 사복으로 갈아입고 친구 아들 돌 잔
치에 갔다고 하시오.".

그 직후 서종철 사령관이 직접 박원빈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
다. 아내가 받아 남편이 시키는 대로 말하니까 서종철 소장은 "사복
을 입고 나갔습니까, 군복을 입고 나갔습니까"하고 캐물었다는 것이
다.

"저도 외출했다가 방금 들어왔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뜸을 들인 뒤 그녀는 "사복을 입고 나갔다"고 말한다는게
"군복을 입고 나갔습니다"고 말해버렸다. 자신의 실언에 놀란 그녀
는 어제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이 외출나갔다가 오더니 서류뭉
치를 주면서 땅속에 파묻어두라고 했던 것이다. 그 서류는 5·16거
사 작전계획서였다. 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겁이 났던 박원빈 중령의
처는 서류를 불태우려고 아궁이에 넣고 성냥을 그었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잘 되지도 않았다. 박원빈은 본부사령 계충의 소령을 불렀
다. '사령부 경계를 철저히 하고 내 허가 없이는 누구도 출입시키지
말도록' 지시한 뒤 그는 차를 내어 부평33사단으로 달렸다.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과 전투단장 이병엽 대령을 불러냈다. 박원빈
은 "30사단은 정보가 누설되어 희망이 없다. 33사단은 꼭 제대로 출
동해야한다"고 못을 박고는 돌아왔다.

이날 밤의 혼란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 김재춘 대령에게도 이날(5월15일) 저녁은 지루하고 초조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필동 아스토리
아 호텔에 갔다.

커피 숍에서 그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헌병 백차가 신세계 백
화점쪽으로 달리고 있었다.괜히 불안해졌다. 그는 호텔을 나왔다.퇴
계로를 거쳐 남대문쪽으로 가다가 차를 세우고는 약방 앞 공중전화
를 잡아들었다.6관구사령부로 전화를 걸어 박원빈 중령을 찾았다.없
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주번사령을 바꿔."
"이경화 중령입니다.".

"지금 시내에선 헌병 백차가 질주하고 있는데 사령부엔 아무일이
없나?"
"지금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장병들이 귀대하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작전 참모 어딨어?"
"안 보입니다. 비상이 걸리니 우리 편이 아닌 장교들까지 소집되
어 부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알았다. 내 곧 들어간다.".

원래 혁명계획은 사령관과 일반 장교들이 퇴근한 6관구 사령부에
주체 장교들끼리 모여서 쿠데타 작전의 지휘소로 이용한다는 것이었
는데 출발에서부터 빗나가게 된 것이다. 김재춘은 다시 박정희 소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더니 바로 박정희가 나왔다.

"각하, 폭로된 것 같습니다.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래? 그럼 어떡할래.".

박정희는 난감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나가야죠, 뭘 어떡합니까. 빨리 6관
구로 나오세요. 제가 나가서 우선 지휘할테니까 하여간 빨리 나오세
요."

"알았다.".

박정희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5·16거사에 대한 기록에는 이 장면을 묘사할때
박정희가 태연하게 "제2안대로 합시다"라고 말했다고 쓰고 있다. 제
2안이란 비밀이 누설되었을 때 지휘관의 감금 등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거사를 강행한다는 시나리오였다.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는 충격을 받은 목소리였고 '제2안'이란 말은 입에 올리지 않
았다고 한다.

김재춘은 후암동 집으로 갔다.군복으로 갈아입고 권총을 찼다.아
내에겐 "비상이 걸려 부대로 들어간다"고만 했다. 옷을 갈아 입고
대문까지 나오면서 '두번 다시 못 만날 길이 될지 모르는데 작별인
사를 해야 하나'하고 고민했다. 3남1녀를 두고 있었던 김재춘은 이
들에게 눈길을 한번씩 준뒤 아무 말 없이 거리로 나왔다. 지프를 타
고 6관구 사령부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는 벌써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헌병들이 통제를 하고
있었다.

김재춘이 큰 소리로 호통치듯 말했다.

"나 참모장이다. 바리케이드를 걷어라.".

이때 이상한 물체들이 차를 향해 몰려오는 것이 전조등 불빛 사
이로 보였다. 주체 장교들이었다. 이들은 헌병들이 통과시켜주지 않
자 어두운 담장에 다닥다닥 붙어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김재춘이
나타나자 우∼ 하고 몰려든 것이다. 김재춘은 "육본서 온 비상훈련
감독관들이다. 다 통과시켜라"고 헌병들에게 명령했다. 김형욱, 유
승원 등 20여명의 장교들은 6관구 사령부로 몰려들어갔다.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