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영향 적지만 신뢰도 하락해 외자 유입 중단 우려 ##.
러시아 정부가 루블화 평가절하와 모라토리엄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하자, 그 영향으로 아시아가 또 다시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히 약세
를 보였던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불과 며칠 만에 안정을
되찾는 등 러시아 사태는 당초 예상만큼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사실 무역이나 투자 면에서 살펴볼 때 러시아와 아시아 간의 경
제 관계는그렇게 긴밀하지 않다. 러시아의 주된 무역 상대국은 서유
럽과 중동부 유럽 국가, 미국 그리고 CIS 등이고, 러시아에 투자를
많이 한 나라들도 독일 미국 프랑스 등 구미 선진국들이다. 또한 러
시아의 주된 수출 품목은 원유 가스 목재 등 원자재로, 아시아 국가
들의 공업제품과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
따라서 러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아시아 경제가 당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며, 이미 크게 떨어져 있는 동남아와 한국 등의 통화
가치가 굳이 루블화 때문에 추가로 절하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루블화의 평가절하는 그 자체로는 엔화 약세나 위안화 평가
절하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일본과 중국의
무역에서 대러시아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데다, 일본과 중
국 양국 모두 대러시아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루블화 평가절하로 오
히려 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남아와 한국에 이어 러시아로까지 금융위기가 파급되었
다는 사실이 국제금융시장에 몰고 올 심리적 충격에 있다. 오늘날의
국제금융시장은 세계경제에 어떤 변동 요인이 발생할 경우 그것이
초래할 실제적 영향보다 몇 배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
통이다.
더욱이 지난 1년여간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어온 아시아 국가들에
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격으로 다시 한
번 큰파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러시아 금융위기가 이른바 '신흥시장'
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또 다시 크게 떨어뜨림으로써 아
시아 경제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본 유입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
다는 점이다. 이 경우 안전 통화로서의 달러화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엔화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가 장기적 약세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고
현재 달러화에 대해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위안화도 평가절
하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가능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금 상황으로는 이
런 시나리오대로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제금융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또한 지난 해의 아시아 금융위기와는 달리 이
번의 사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사건이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 가장 많은 대출을
해준 독일 은행들은 이번 사태에 대비해 보증이나 담보를 상당 부분
받아 놓아 모라토리엄 선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느긋한 입장을 보
이고 있다.
더구나 사회주의 붕괴 이후 경기침체와 금융불안 국면이 장기화
되어 온 러시아에서는 이번의 사태가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
라고 할수 있다.
즉 러시아의 이번 금융위기는 그동안 고도성장의 가도를 달려 왔
던 아시아 국가들이 맞은 예기치 못한 위기와는 그 성격과 깊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 금융위기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심화시킨다기보다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유발된 세계경제의 중병이 러시아발 바이러스로
한층 더 깊어진 것이라고 보는 게 보다 현실에 가까운 해석일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