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대 통일벼 등장, 배고픔 사라져...가공식품시대 연 라면 ##.
8·15해방은 '배고픔으로부터 해방'까지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이
어진 6·25는 지독한 굶주림을 멍에처럼 씌워주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하찮은 음식으로 끓인 죽을 '꿀꿀이죽'이
란 자조섞인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살기 위해 먹었다. 그로부터 50년.
보릿고개를 넘어 이제는 배불리 먹기보다 무얼 어떻게 먹는가를 더
중시하는 풍요로운 시대가 됐다. 우리의 식문화 변천사 속에는 생생
한 '우리들의 이야기'가있다.
◆보릿고개와 쌀밥=정부수립 당시만 해도 국민들은 극심한 식량난
에 허덕였다. 쌀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시커먼' 보리밥을 먹어야
했다. 보리쌀의 1인당 소비량은 지난 56년 33.1㎏ 정도. 97년의 소비
량이 1.7㎏에 불과한 것을 보면 당시 쌀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알수
있다.
건국직후 미국의 원조밀가루(PL480)가 들어오면서 식량사정은 다소
호전됐으나, 정부는 60년대 중반까지 '분식장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분식이 건강에 좋다"는 구호가 들렸지만, 사실은 쌀이 부족
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쌀밥을 싸온 아이들은 혼내주던 때도 이 시기.
그러나 60년대 중반까지 6월의 '보릿고개'는 여전했다. 농림부 서
규룡 농산원예국장은 "풋보리가 익을 6월쯤이면 대부분의 가정에 양
식이 떨어졌다"며 "풋보리를 베어 알갱이를 쪄서 보리를 먹곤 했다"
고 회상했다.
보릿고개가 사전에서 사라진 것은 '녹색혁명' 이후. 70년대초 '통
일벼' 대량재배 쌀수확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쌀문제가 '양적'으로 해
결됐다. 그후 국민들이 어느 정도 배를 채우게 되자 "통일벼는 맛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국민을 굶주림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었던
통일벼는 84년에 임무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맛도 좋은 일반미로 풍족하게 먹기 시작한 것은 87, 88년 연속 대
풍이 들면서부터다. 그후 쌀이 남아돌면서 쌀막걸리, 쌀과자 제조가
장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농지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요즘은 다시
쌀 자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설탕과 라면=해방후 우리나라에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공장
외에 이렇다 할 식품 제조공장이 없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식품
공장은 53년 11월 부산 전포동에 설립된 제일제당 설탕공장. 설탕은
이렇다할 감미료가 없었던 50,60년대의 최고 인기식품이었다. 지금도
'사재기' 얘기만 나오면 설탕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설탕에 대한
그 때의 집착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또 대한제분이 54년 밀가루 생산을 시작했으며, 대상(구 미원)이
56년 시판한 '미원'도 국민 식문화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전에도
일본의 '아지노모도'가 일부 수입돼 팔리고 있었지만 미원이 나오면
서 국산 조미료 시대가 막을 올렸다.
60년대초 등장한 라면은 우리 식문화에 본격적인 '가공식품' 시대
를 열었다.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이 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한그
릇에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목격한
것이라면 등장의 계기였다.
전 회장은 일본여행중 구경했던 라면이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와 63년 9월 '삼양라면'
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가격은 개당 10원이었다. 당시 자장면 한 그
릇이 20∼30원,식당에서 찌개가 30원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꽤나 고급
음식이었다.
라면은 지난 한햇동안 37억8천여만개가 팔려 국민 한 사람이 연간
84개나 먹었을 정도로 시장규모가 급성장했다. 올해는 국내 라면시장
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음식 맛을 내는 데는 참기름, 부침개를 만들 때는 돼지기름을 쓰
던 시절이던 67년 신동방(구 동방유량)이 내놓은 식용유는 우리 식탁
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오뚜기가 71,72년에 잇따라 출시한 케첩과 마
요네즈는 고추장, 된장, 젓갈 등 전통 식품들이 해오던 역할을 대체
해 요즘 세대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식품이 됐다.
◆과자=해방 이후 국내 제과업계에는 동립산업, 풍국제과, 해태제
과등 3개 대기업과 군소 업체들이 난립해 있었다.
45년 10월에 설립된 해태제과는 우리나라 과자의 효시가 되는 제
품들을 숱하게 만들어냈다. 45년에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생산되는
과자가 '해태양갱'. 해태는 이밖에도 국산 1호 초콜릿 '해태쵸코레'
(57년), 1호껌 '슈퍼민트'(67년)도 내놓았다.
해태제과가 지난 70년 4월 첫 선을 보인 부라보콘은 우리 국민 대
다수가 적어도 하나씩은 먹어본 경험이 있다는 인기상품. 72년 판문
점에서열린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에게 부라보콘을 대접하
자, 북측 대표단이"미제냐"고 물어, 상표에 나온 주소로 국산임을 알
려주었다는 일화도 남겼다.
풍국제과는 56년 동양제과로 인수된다. 동양제과의 오리온 캬라멜
도 56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수상품으로 남아 있다. 74
년에 처음 나온 '초코파이'는 동양제과의 최대 히트상품. 출시 이후
98년 6월말까지 53억7천5백만개(6천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과자의 역사를 쓰려면 71년 12월에 개발된 롯데제과의 새우깡을 빼
놓을 수 없다. 처음 출시된 후 작년까지 팔린 새우깡은 총 5천1백4억
원어치, 봉지로는 45억5천봉지에 달한다.
◆청량음료와 우유=해방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울사이다, 금강사이
다, 삼성사이다, 스타사이다 등 사이다 상품이 4개나 있었다. 그러나
50년초 등장한 '칠성사이다'가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리기 시작, 70년
대 들어 선두업체로 올라섰다.
6·25 때 미군들을 따라 들어왔던 콜라는 56년에 코카와 펩시가
국내에 일시 상륙했으나, 정착하지 못하고 곧 철수했다. 그러다 68,
69년에코카-펩시콜라가 다시 들어오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인 탄산음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 서울지역에 우유를 공급하던 경성우유동업조합(현 서울
우유)의 우유생산량은 하루 5백50㎏에 불과했다. 서울우유가 48년부
터 '건강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면서 우유소비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
작, "우유를 먹으면 아이가 토실토실해진다"는 믿음이 번져나갔다.버
터와 분유는 64∼6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유산균 음료인 요구르트가 첫 선을 보인 것이 71년 8월. 한국야쿠
르트가 내놓은 '요구르트'로 80㎖짜리 액상 발효유였다. 발매초기 야
쿠르트아줌마들이 가정 판매를 하면서 유산균을 드시라고 하니까,"무
슨 병균을 돈 주고 사먹느냐"며 소비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판매 첫 해 3억원어치도 안되던 요쿠르트 시장은 올해 1조1천
억원규모로 커졌다.
◆소주와 맥주=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제시대부터 주로 애용하던 주
류는 막걸리(탁주). 50,60년대에도 막걸리(시장점유율 80%) 애호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소득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70년대 중반부터 소주
와 맥주가 막걸리를 점차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두꺼비로 유명한 '진로' 소주는 54년 6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공
장에서 처음 선보였다. 진로가 소주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데는 CM송 '진로파라다이스'가 큰 역할을 했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
차∼'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당시 유행가를 능가할 정도로 대히트곡
이 됐다.
지금은 대중주가 됐지만, 맥주는 70년대 초반까지 상당히 고급술
에 속해 서민들이 사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술이었다. 일제시대부터 맥
주를 생산했던 OB맥주는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맥주시장을 휩쓸었으
나, 93년 등장한 하이트맥주에 밀려 선두자리를 내주었다.
또 80년대 '거품경제' 시기에 등장한 '룸살롱'과 이곳에서 인기를
모은 '폭탄주' 주법은 우리나라 주류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77년
첫 선을 보였던 고가의 국산양주(베리나인)가 룸살롱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이후 주류업체들은 수십가지의 양주를 개발, 시판에 나
섰다. 지난해 주류시장 점유율을 보면 맥주가 55.1%, 소주가 21.6%,
양주가 14.2%를 차지했고, 전통주인 막걸리는 겨우 3%에 그쳤다.
◆패스트푸드 상륙=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음식문화에 엄청난 변
화가 생겼다. 햄버거와 피자, 프라이드 치킨을 필두로 맥도널드 햄버
거, 롯데리아, 웬디스, 버거킹, 피자헛, 피자인 등 세계적인 패스트
푸드 업체들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공략했다. 어린이들이 먹고 싶은
외식 메뉴로 자장면을 꼽던 것이 햄버거나 피자로 바뀐 것도 이때부
터.
또 80년대 후반부터는 패밀리레스토랑이란 이름으로 외국 외식 업
체들이 대거 상륙했다. 코코스, TGI프라이데이, 베니건스, 시즐러를
비롯한 외식 업체들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국내시장을 파고들어 한국
인의 외식문화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넓은 주차장과 깔끔한 내부장식을 갖추고 서구식 서비스를 제공하
는 패밀리레스토랑은 국내 식당들의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기여도 했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업계와 패밀리레스토랑들은 IMF체제 이후 로열
티 부담증가와 국산품 애용 분위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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