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염경수(49)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은 체구에 단
아한 인상이 소년티를 벗지 못한 데다 말투마저 조용조용하다. 교포나
주재원들도 그가 그저 돈 좀 있는 사람일 것으로만 짐작할 때가 많다.

그가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등에 한 해 10만 개 이상의 여행용 가
방을 팔고, 지난 십수 년 동안 꾸준히 매년 4백만 달러 이상의 매출 실
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도 패션과 디자인의 나라, 그리고 고급브랜드가 판치는 프랑스
에서 염경수씨는 순수하게 자신의 브랜드인 '엘리트(Elite)표 가방'을
팔고 있다.

파리회사에서는 튀니지인, 인도인 등 남자 직원 2명, 부인 정영선(46)
씨, 그리고 본인 등 4명이 일하는 '엘리트 가방' 회사가 프랑스에 진출
해있는 여행용 가방 전문업체 중 제3위의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면 쉽
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샘소나이
트,델지 다음으로 여행객들을 많이 끌고 있는 가방이 '엘리트'표다. 생
산공장은 사이공을 비롯한 베트남 3개 도시에 있다.

파리 순환도로를 벗어나 센 강을 끼고 남쪽에 인접한 이브리 쉬르
센 시에 접어들면 오슈가 3번지에 '엘리트 가방'의 사무실 겸 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빌딩을 올리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실속없이 겉치레만
차리는 것이 영업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염경수 대표이
사는 말했다. 80년대 초 맨손으로 프랑스 땅에 건너와 일터, 창고, 숙
소 였던 오슈가 3번지를 염 사장은 뜨고 싶지 않다. 애착도 간다.

지금도 창고 6백㎡, 사무실 1백㎡, 마당 2백㎡인 이곳을 바꿀 생각
이 없다. 창고에는 가방이 들어 있는 박스가 거의 10m 높이로 위태롭게
쌓여 있다. 어떻게 쌓고 내릴까 아찔할 정도다.

"번듯하게 칸막이를 해서 보기 좋게 진열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게 다 돈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말하자면 현재 '엘리트 가방'의 규모로는 내부 시설 투자를 늘릴 필
요가 없다는 것이다. 염 사장은 한국 경제의 병폐, IMF 위기의 근본 원
인도 따지고 보면 실속없이 외형만 늘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해야 그 안에 돈벌이가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급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핸드백에는 곁눈도 주지 않
는 이유다. 고급 가방은 값이 2배 정도 차이나는 란셀, 피에르카르뎅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엘리트'보다 30∼50% 정도 싸구려인 저급
품은 쫓아오지 못한다. 염 사장의 엘리트 가방은 IMF 한파에도 끄떡없
이 잘 견뎠다. 이 시절이 더 나을 것도, 더 모자랄 것도 없었다고 할만
큼 튼튼하다.

염 사장의 판매 전법은 수퍼마켓 대신 가방 전문점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한 번에 수천 개씩 가져가는 대형 수퍼와 거래하는 것보다는
한 품목에 그저 5∼10개를 가져가는 것이 고작인 가방 전문점이 생명력
도 길고 안전하다. "장사는 한 사람에 목을 걸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그래서 3백 여개의 가방 전문점이 염 사장의 고객이고 이들 중에는
20년 가까이 된 신뢰가 깔린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과 우
정이 인간적인 것만은 아니다. "엘리트 가방이 실용적이고, 유행도 웬
만큼 따라가면서 가격이 적당하기 때문에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이 염사장의 생각이다.

KOTRA 허상진 유럽본부장은 "패션이 중요시되는 가방 시장에서 우리
브랜드를 이만큼 성공시킨 이는 염 사장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 사장은 작년이 좋았다. 큰딸 지휘(20)양이 프랑스 최고 명문인
고등상업학교(HEC)에 합격했고, 매출도 4백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벤츠
E 320 클래스도 한 대 샀다.

●1949년 서울생
●서대문 초등,중동 중-고교 졸
●75년 홍익대 전기과 졸
●한영전기(전기건설회사), 삼륜물산(가방전문회사) 등서 각각 1년
정도씩 근무
●77년 독일 행
●79년 프랑스 행
●80년 파리에 '엘리트 가방' 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