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1 보선서 지고도 이긴 '여성 다윗' ##.

7.21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유권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식물
국회'라는 비난 속에 치러진 선거는 평균 투표율이 40.1% 밖에 되지 않
았다. 그러나 이 선거 한켠에서 신선함을 안겨준 인물이 있었다. 경기
광명을 선거구에서 여당 총재권한대행이라는 거물과 맞붙었던 전재희(49)
씨다.

그녀는 상대 후보에게 당선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밤늦게까지 이
어진 개표 방송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끊임없이 상대후보와 엎
치락 뒤치락을 거듭했고, 결국 1천여표 근소한 차이로 졌다. 그를 잘 모
르는 사람들은 "전재희가 누구길래 여당 총재권한대행과 저렇게 줄다리
기를 할까" 했고, 언론을 통해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전재희
의 저력은 무엇일까" 궁금해 했다.

애초 이 선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다. 상대가 골리앗
처럼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인 것도 그랬지만, 워낙 관료 출신의 전씨 경
력이 '조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직도 우리 풍토에서 여성은 불리
함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상대 후보는 이기고도 "상처뿐인 영광"이나
"절반의 패배"라는 군소리를 들어야 했고, 대신 전씨에게는 "졌지만 이
긴 선거"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지난 6월말로 광명시장을 퇴임하고 선거를 치른 뒤, 한나라당 광명을
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선거때 도와준 사람들 만나 인사하고
지구당 업무를 파악하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예전처럼 새벽 5시 30분이
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힘들거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지역구 의원선거였기 때문이지요.상
대가 아무리 '거물'이라고 해도, 저만큼 광명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큰
인물은 큰 인물대로 할 일이 있고, 지역에는 지역인물이 있는 겁니다.".

그의 말투에는 아직도 자신감이 넘쳐났다. "선거에서 상대방이 누구
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자격을 갖췄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게
그의 말이다. 선거 얘기가 나오자 그의 말투에서 경상도 억양이 조금 더
도드라졌다.

"조 후보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기아자동차 근로자들
덕에 이긴 거잖아요. '고용 승계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하고, 노조위원장
이 지원 유세를 했으니까요. 국회의원 한명이 어떻게 국제입찰에 올라있
는 기업의 고용승계를 보장합니까. '국회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
고 할 수는 있겠지요.".

전씨는 선거 과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여당에서 금권과
관권을 동원하지 않았으면 이겼을 것"이라는 말도 쏟아냈다.

첫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첫 중앙부처 여성 국장, 첫 여성 시장…
전씨에게는 '첫 여성 ○○'라는 수사가 유난히 많다. 94년 첫 여성 시장
으로 광명시장에 임명된 뒤 그는 "민선 시장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 앞
으로 '첫 여성 대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광
명시장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출마를 고사하다가 결국 수락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출마 이유는 두가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선 당에서 끈질기게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당원으로서 끝끝내 거
절할 수는 없었지요." 그건 어찌보면 무척 '단순한' 이유다. 둘째 이유
를 설명하면서 전씨는 목소리가 반 옥타브쯤 높아졌다. "당에서 저를 공
천하려고 하자, 당장 외압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6.4 지방선거에서
선거법을 어겼다는 겁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유희두 한나라당 광명시장후보를 지지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20년간 행정부에서 일했고,
4년동안 광명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꼴
이된 겁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광명시 경력'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
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국회의원 출마'였다.

"시민의 뜻을 직접 물어서라도 명예를 회복해야 했어요. 반의 반표라
도 얻어, 저를 아끼는 시민들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게 광
명시민들에 대한 도리였습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실패
가 아니다"라면서 "감사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전씨는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치러왔다. '첫 여성 ○○'라는 직함이
큰 이유였다. 그는 행정고시에 한번 떨어진 뒤론 이번 선거가 첫 '낙방'
이다. 고시 공부하러 경북 의성 한 암자에 들어가서, 고생스러울 때마다
'Burn your boat behind you(돌아갈 배를 태워버려라)' 라는 구절을 떠
올렸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있다. 무슨 일을 하든 안되는 경우는 상정하
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녀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제가 뛰어난 게 아닙니다. 그건 우리나라 여성 발전이 낙후됐다는 반
증이지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가야할 길이 멀고 멀다는 것이,
저에 대한 주목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여성'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으로 어떤 것을
보편화하는 것은 반드시 오류를 동반합니다. 개인적 적성과 자질의 차이
를 성별로 판단해서는 안돼요." 그는 "여성에 대한 관념의 혁명이 필요
하다"면서 "내 생각에 경찰청장이 여자였으면 신창원이 잡혔을 것"이라
며 웃었다.

전씨는 자신을 일하게 하는 동인을 부모님과 가족, 신앙에서 찾았
다. 그는 특히 어머니를 '가장 큰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어머니(조추자·69)는 그에게 사회참여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맏딸인 그는 어머니로부터 집안살림 하는 방법보다 위인들 이야기를
더많이 듣고 배웠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도 빠짐없이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나는 일이 안되면 더욱 힘이 난다'고 하셨어요. 어
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는 분이시지요. '역경이 사람의 당당함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우리 어머니의 백분의 1,
천분의 1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쯤 해서 그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
도 했다.

전씨는 또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으로 '자기확신'을 들었다. 그것 없
이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면 '정신없이
돌진한다'고 했다. 한가지 더 있다면 '첫 여성 ○○'라는 이름이다.그만
큼의 책임감을 항상 느끼고 있다고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전씨는 수시로 마음속 기도를 한다. "기도를 안
하면 허영과 오만이 생기고, 기도하면 자신이 보잘것 없다는 걸 깨닫고
이타심이 생겨요. 힘들때마다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힘
든지 아시죠?'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짧은 기도를 천주교에서는 '화살
기도'라고 한단다.

강인하고 당당한 것 같기만 한 그도 가정생활에서는 '유교적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남자 옷이 걸린 옷걸이에 여자 옷을 덧
걸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그도 빨래감을 담아둔 통에 남편 와이셔츠
가 맨 밑에 '깔려' 있으면 슬쩍 집어 맨 위에 올려놓는다고 한다.

"그걸 단순히 '유교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남편과 저는 서로를
최고로 생각하고 살거든요.그런 표현의 하나일 뿐이지요." 그의 남편(김
형률·48·조달청 구매국장)은 그가 '첫 여성 행시 합격'으로 화제가 됐
을때 라면상자 한박스만큼 받은 '팬 레터'를 보낸 사람중 한명이다.두사
람 사이엔 정민(21·서울대 서어서문 3)-희정(20·고려대 영문 2)남매가
있다.

전씨는 당분간 지구당 일을 하면서 다음 일을 생각해 볼 요량이라 했
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지, 평소 꿈꾸던 '국제협력 분야'를 공부
할지는 아직 모른다. "16대 선거에 안나가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지도 모
르지요. 아무리 싫어도 정치없이는 살 수 없고…. 그렇게 혼탁한 곳을
누군가가 바꿔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불쑥 "저는 영원한 광명시장이예요"라고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저 사람 예전 광명시장이잖아'라고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영원히 광명시장이에요." 그는 그만큼 광명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비록 졌지만, '여당 거물' 앞에서도 당당했고 '패배' 후에도
밝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