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가방 업체…전통과 전위적 패션쇼로 '여름 사냥' ##.
'수요자 입맛은 우리가 만들어 간다.'.
1백44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가방 업체 '루이비통'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짙은 갈색 바탕에 창업자 이니셜인 L자와 V자, 꽃과 별 무늬를
새겨 넣은 가방은 1세기가 넘도록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 공
항과 길거리엔 늘 루이비통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1백만원을 거뜬
히 넘기는 제품들이 많지만, 국내에서도 '루이비통'을 외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루이비통이 최근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액은 약 2조1천6백억원. 이 중 60∼70%를 아시아에서 올
렸지만, 아시아 경제 위기로 고급 브랜드들이 몸살을 앓는 때라 언뜻 이
해되지 않는다.
아시아의 IMF 위기에도 아시아 매장 80여 군데 중 한 군데도 문닫지
않았다. 해고된 사람도 물론 없다. 오히려 올 들어 중국의 광동·대련
등에 매장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에도 두곳 더 오픈했다. 매장 한곳 선
정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곳이고 보면, 사치품 시장 사이에서도 '기현상'
이 아닐 수 없다.
회사측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경쟁력이 돋보일 수 있다'고 자신한
다. 데이빗 아우 아태지역 마케팅 담당이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불
황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사실 지난해부터 루이비통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5월 중국
대련에서 북경에 이르는 '자동차 랠리 경주'를 열었고, 아시아 국가를
순회하며 패션쇼와 음악회 등 '깜짝' 문화 행사를 더욱 활발히 벌이고
있다. 프랑스 월드컵를 맞아 자사 상징인 모노그램 무늬 축구공으로 빅
히트를 쳤다. '수요자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고 자신하지만, 곳곳에 경
쟁력의 비결이 숨어있다.
루이비통 스스로는 자체 경쟁력을 '전통'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
이 첫가게를 연 때가 1854년. 목수의 아들인 루이 비통은 당시 파리에서
트렁크 짐 꾸리는 견습생이었다. 한번 여행 갈 때면 트렁크를 수십 개씩
갖고 떠났던 귀족들을 상대하면서, 귀부인들의 화려한 드레스에 구김이
안가도록 짐 싸는 솜씨를 발휘했다. 기차 화물칸에 쉽게 쌓아 올릴 수
있는 뚜껑이 평평한 트렁크를 개발했다. 루이비통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 뒤 접을 수 있는 가방, 특수 자물쇠를 단 가방 등이 루이비통의
2세, 3세인 조르주 비통, 가스통 비통 등에 의해 꾸준히 개발돼 왔던 것.
이런 '소박한 첫 출발'을 회사측은 틈만 나면 강조한다. 고가 사치품이
란 이미지보다는, 장인 정신으로 이어져 온 명품이란 이미지를 내세우려
는 것이다. 전략이 맞아 떨어졌는지 '가방이 아닌, 루이비통을 들고 싶
어하는'사람이 차츰 생겨났다. 이들은 '루이비통이 만들었다면야' 하면
서 믿고 샀다. 실제 프랑스 샹젤리에 본점엔 이곳 가방을 볼 목적으로
파리를 찾은 일본인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말로만 전통을 강조하지 않고, '여행'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살리고
있다. 여행용 트렁크에서 비롯된 데 착안, '루이비통은 여행의 동반자'
란 점을 강조한다. 징을 박아놓은 듯한 가방들은 물론, 스카프나 최근
내놓은 펜도 마찬가지다. 세계 유수 도시의 호텔, 카페, 미술관 등에 대
한 정보를 담은 '시티 가이드'란 안내 책자도 나올 예정.
영화 '타이타닉' 흥행도 자사 이미지 홍보에 이용했다. '타이타닉호
침몰이후 인양 작업에서 루이비통 트렁크를 발견했는데, 열어보니 소지
품이 물에 하나도 젖지 않았다'는 '전설'을 퍼뜨리고 있는 것.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명품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질 것이라고 회사측
관계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루이비통이 무턱대고 전통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3∼4년
전부턴 디자인이나 마케팅에서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가방 디자인부
터 그렇다. 96년 루이비통 가방의 심벌인 '모노그램 캔버스' 탄생 1백주
년 맞이 패션쇼. 가방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전위적 패션이 선보여
파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엉덩이 위에 매는 길쭉한 가방, 우산 달린 배
낭, 속이 훤히 비치는 쇼핑 가방, 동물 털로 장식한 핸드백….
은은한 톤에서 갑자기 빨강, 노랑, 초록 등 천연색을 강조한 '에피'
가방이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반짝 유행에 따르지 않는
다'는 기존 방침과 달라 보여서다. 하지만 이 상품 역시 '효자 품목'이
됐다. 그 와중에 1888년 사용됐던 체크 무늬의 '다미에' 모델도 다시 부
활시켰다.
루이비통의 발빠른 움직임은 마케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총 매
출액의 15% 정도를 마케팅에 쏟아붓고 있다. 경쟁 업체들의 2∼3배에 이
르는 수치다. 이벤트도 최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지난 5월 5박 6일간 중국 대련∼북경에서 벌어진 '루이비통 클래식
자동차 경주'. 만리장성 등 중국 곳곳에 늘어선 중국 어린이들 손엔 루
이비통 깃발이 쥐어져 있었다. 지난 6월 신라호텔에선 열린 '루이비통
풋볼 환타지' 행사의 경우, 초호화 대형쇼로 치러졌다. 가수 박진영의
현란한 춤으로 시작, 톱 탤런트와 디자이너 등 3백명 가까이 참석해 성
황을 이뤘다.
지난 7월 11일 홍콩에서 벌어진 펜 론칭 행사에는 홍콩 톱 스타들과
유명인사는 물론, 아시아 6개국 사람들을 초대했다. '우리가 최고다'를
말로 하기보다는 이벤트로, 쇼로 보여주는 전략이다. 이렇게 루이비통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사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광고도 물론이다. 자주는 아니어도 한번 내보내면 화끈하게 한다. '한
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기원합니다'란 카피와 함께 스타킹을 신은 길
쭉한 다리들 사이에 있는 축구공 광고. 로고는 한켠에 조그맣게 써 있을
뿐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펜을 입에 물고 있는 광고도 그렇다. 아무 글자
도 없다. 하지만 눈가에 새긴 모노그램 무늬만 보면, '아∼ 루이비통이
구나' 하게 된다.
이 회사 아시아 PR팀 마리아 미우 부장은 "제품 한 개 더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루이비통 세계'를 보고 느끼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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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쥬 브룬쉬비히 아시아 부사장
"머리론 전통, 가슴으론 최신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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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이미지와 현대적 패션 경향을 어떻게 조화시키나.
"트렁크 만드는 가내 수공업 회사로 시작해 전통을 강조해 왔다. 하
지만 그 전통이 빛을 보려면,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시대 분위기를 거슬
러선 안된다. 머리로는 전통을, 가슴으론 현대 감각을 따르고 있다.".
-- '두마리 토끼'를 잡느라 생기는 고충은 없나.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둘의 조화를 이루면서 커온 회
사다. 판매 전략을 세울 때는 전통을 고려하고, 이를 표현할 때는 현대
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 3년 전부터 이벤트 등이 루이비통 답지 않게 '파격적'이라 하던데.
"그렇게 봐준다면 성공이다. 작은 모임에도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고,
갖가지 볼거리를 준비해 풍성하게 치른다. 우린 이 계통의 '개척자'라
여긴다. 지루해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니 '상상을 뒤엎는다'
는 말을 듣곤 한다.".
-- 주 타깃 층은.
특별히 정해놓지 않았다. 연령·성별·출신지 상관없이 루이비통의
꿈과 정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된다. 한번 우리 물건을 쓰고 나면,
평생 고객이 될 수 밖에 없도록 제품 질과 관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아시아 경제 위기로 사치품 매출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데.
"물론 매출액이 다소 줄었다. 하지만 이런 때가 최고 이미지를 파는
데엔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긴다. 올 들어 중국의 광동·대련 두곳에,
한국에도 두곳에 매장을 오픈했다. 남들은 '이상하다' 할지 모르지만,
우린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신중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 루이비통이 속해있는 LVMH 그룹 안에 동종 경쟁 업체들도 있던데.
"문제될 게 없다. 좋은 전략이 있으면 서로 배우고, 어려울 땐 서로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인력과 매출액 면에서 루이비통이 눈부신 성장
을 할 수 있었던 것은 87년 합병의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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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그룹은 어떤 곳
루이비통·모에트 헤네시 합병해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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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낳아, 이젠 루이비통을 받쳐주는 기둥이 됐다.'.
루이비통이 속해있는 LVMH 그룹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급 사치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프랑스 'LVMH 왕국'에는 루이비통을 비롯해 크리스티
앙 디오르, 지방시, 셀린, 겐조, 게르랭, 모에트 헤네시 등이 속해 있
다. 세계적 패션 및 가죽 제품, 코냑, 화장품 등 유명 브랜드들이 한
초대형 그룹 아래 늘어서 있는 것이다.
LVMH 그룹의 매출액은 97년 기준 10조6천억원 정도. 이 중 25%를 루
이비통을 비롯한 패션 잡화류가 차지한다. 지난해 LVMH는 세계 최대 면
세점 업체인 DFS까지 인수했다. 자체 브랜드만으로 대형 쇼핑몰을 만들
정도 수준이라 한다.
규모가 이 정도 되다보니 피아체, 카르티에 등 세계 최고급 시계 회
사를 중심으로 모인 스위스 방돔(Vandom) 그룹과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LVMH 그룹은 87년 가방 회사 루이비통이 주류 회사 모에트 헤네시를 합
병해 세웠다. LVMH란 두 회사 이름 첫자를 딴 것. 합병 전인 77년만 해
도루이비통은 매장 두곳, 직원 1백명, 매출액 1천4백만달러에 지나지
않는 '가족형' 회사였다. 모에트·헤네시는 72년 3억달러이던 총소득이
합병 후 10억달러로 늘었고 전 세계 코냑 시장의 20%, 샴페인 시장의
15%를 점유했다.
그룹은 89년부터 베르나르 아르노(49) 회장이 맡고 있다. 당시 크리
스티앙 디오르 등에서 소매업을 했던 그는 헨리 라카미에 루이비통 회
장과, 알랭 슈발리에 모에트·헤네시 회장 사이 내부 알력이 계속되는
틈을 타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는 이어 과거 몸 담았던 크리스티앙 디오르, 셀린 등 유명 브랜드
를 차례로 인수해갔다. 그는 종종 '사람은 프랑스인, 경영 방식은 미국
인'이란 말을 듣는다. 장사가 안된다 싶으면 과감히 팔고, 잘되는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인수해 내기 때문이다.
LVMH 그룹엔 경쟁 브랜드들도 함께 속해 있지만, 타깃층이나 이미지
를 달리 특화시켜 불만은 없다 한다.
LVMH 그룹의 모토는 '소품종·고품질·다량 생산'. LVMH 산하 회사에
취직한 근로자들이 당장 생산 현장에 투입되지 않고, 수 년 간에 걸친
연수를 받고 최고 기술자로 길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은
"살아있는 예술을 보호하는 마음으로, 제품 하나하나에 완벽성을 기한
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