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세대' 독자들 사이에 최근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
의 문학이 뜻밖의 반향을 부르고 있다. 아직 이름조차 생소한 이 장르의
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의 별난 이야기들을 특별한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유럽 문학전통에 뿌리를 둔 판타지 문학은 그간 국내에선 소수 매니
아들끼리나 읽고 열광했었다. 이 '주변의 문학'이 지금 한국문학의 중심
을 향해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젊은 작가 이영도(26)가 일으킨 '드래곤 라자'
선풍. PC통신에 연재했던 이 장편은 창작 판타지 소설론 최초로 국내 유
수출판사인 황금가지에 의해 발탁돼 대중에게 첫선 보였다. 6월 1일부터
21일까지 전12권으로 완간된 소설은 출판사 집계에 따르면 22일까지 23
만권이 판매되면서 베스트 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인간을 비롯한 일곱 종족이 어울려 사는 환상 세계에서 17세 소년이
'드래곤 라자'라는 구원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에선 음모와
암투, 괴물과의 사투, 곳곳에 번득이는 위트 등이 읽는 재미다. 오크,엘
프 등 숱한 캐릭터들 이름부터가 낯설다.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 등 네티즌들은 지금도 '드래곤 라자'를 놓고
토론하고 캐릭터를 연구한다. 이들은 아예 소설 이름을 'D/R'이라 줄여
부른다.
독자 반응에 고무받은 황금가지 출판사는 환상문학의 아버지라는 E T A
호프먼의 '악마의 묘약' 등 20권의 환상소설 전집을 곧 내기로 했다. 이
미 서점가에 나와 있는 미즈노 료의 '마계마인전'이나 다나카 요시키의
'창룡전' 등 일본 판타지 소설들이나, 환상 세계를 형상화한 과학소설시
리즈인 시공사의 '그리폰북스'의 판매량도 늘고 있다. '판타지 문학 증
후군'이다.
판타지 문학은 서구 유럽 민족 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
늘의 판타지 소설이란 '반지의 군주'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J R R 톨킨이
정립한 '정형화된 판타지 소설'이다. 분위기는 서양 중세에서 빌려온다.
왕국과 부족이 싸우고, 마법과 변신술이 각축하는 것은 판타지 소설들의
공통적 구조다.
왜 지금 판타지 문학을 읽는가. 그 선풍은 영상세대 독자들이 불러왔
다. 그것은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에 심취하고 현실과 가상현실
을 넘나드는 신세대의 감수성과 맞아 떨어진다. 흥미 위주라는 점에선
대중적이지만 주제의식 면에서 통속문학보다는 한 계단 위다. '드래곤
라자'의 경우에도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라는 작가의 의식이 드러난다.
한국의 판타지 문학붐은 문학의 다양한 가능성에 눈돌리고 있는 90년
대 문학풍토를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실제로 송경아 윤대녕 송대방
등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에도 판타지 소설의 상상력은 암암리에 침윤되
고있다. 서울대 김성곤(영문학) 교수는 "환상 문학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그것들 사이의 이분
법적구별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 김명환기자 · mh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