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이 최고' 개인주의 만연…PC-통신기기 보급도 큰 역할 ##.

서울 S대에 출강하고 있는 정모(35·여)씨는 지난 1학기말 성적평
가를 마친뒤 집으로 걸려오는 학생들의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 "왜
내 성적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느냐"는 항의전화였다. 그는 "채점 기준
을 얘기해줘도 바로 수긍하지 않고 따져묻더라"면서 "내가 대학 다니
던 80년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라고 했다.

요즘 신세대를 구분짓는 기준 하나는 '386 세대'라는 말이다. '30
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은 신세대에 낄 수 없다는 얘기다. 어느
시대나 '요즘 젊은이들'은 있어왔고, 그들을 특징짓는 수사들이 있었
다. 21세기를 1년여 앞둔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모래알 세대'로 표
현된다.

이들을 표현하는 '모래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개
념에서 온 형용이 아니다. 그만큼 개성과 관심이 세분화했다는 뜻이
다. 게다가 IMF시대를 겪으면서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점
차 확산되고 있다.

취업을 준비중인 윤헌태(25·성균관대 4)군은 "요즘 대학생들을
가리켜 '모래알'같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면서 "모래알
은 작지만, 하나 하나는 아주 단단한 개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열린 서울대 K고 동문회에는 전체 10%도 안되는 20명
남짓만 참석했다. 그나마 대부분 복학생 위주 3∼4학년들이었다. 1∼
2명씩 끼어있는 저학년들은 선배들이 권하는 술잔을 노골적으로 마다
했다. '술값 내주러' 참석한 한 졸업생은 "예전 동문회 분위기를 짐
작했지만, 너무나 달라졌다"면서 "다시는 참석하고 싶지 않더라"고
했다.

연세대 불문과 4학년들은 올해 졸업여행을 아예 취소했다. 동기
45명이 해외연수, 휴학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데다, 남아있던 사람마
저 "학원도 가야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촌스럽게 무슨 수학
여행이냐"고 해 결국 무산됐다.

● "실력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지극히 현실적 사고와 행동들도 '모래알'들의 모습중 일부다. 서
울대 여름 계절학기 국어작문 시간에 80년대 학번 강사가 '80년대 정
서'를 주제로 삼았다. "80년 5월 광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하니,
한 1학년생이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라고 되받아쳤다.나
머지 학생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썰렁해진' 강사는 말문을 잃었
다고 한다.

"맑스주의를 교양이나 사상 공부를 위해 배울 수는 있겠지요. 그
렇지만 실용가치가 전혀 없는 그런 학문을 현실에 응용하는 건 이해
할 수 없어요.".

이혜원(21·연세대 2 휴학)양은 "나는 성당에서 공부방과 탁아소
자원봉사를 했는데, 운동권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윤실(21·서울대 서양사 3)양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 2만명이나
모인 적이 있다던데, 정말이냐"면서 "요즘은 '독재 타도'나 '대통령
직선제' 처럼 사회를 통합하는 한가지 주제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고 했다.

그만큼 다양해진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는 화두가 있다면, 역시
'IMF'다. IMF는 젊은이들에게 '실력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가르
쳤다. 학부제로 입학한 학생들은 1학년때부터 도서관에 몰린다. 취업
률 높은 전공을 잡기 위해서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비인기 학과'는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하고, 일부 교양과목은 폐강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취업률 낮은 학과에서는 복수전공, 부전공 학생이 크게 늘었고,
시험때마다 학점이 큰 관심사가 됐다.

서울대 1∼2학년생들 사이에서 요즘 평점 3.75(A-) 이하면 성적이
나쁜 축에 속한다. 성적 발표날 학과 사무실은 서로의 성적을 비교해
보느라 고교 교실을 방불케 한다. 한 서울대 1학년생은 "요즘 B- 이
하 성적이 나온 과목은 당연히 재수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학 도서관 대출 실적도 부쩍 늘었다. 도서관 출입 학생수가 늘
어난 탓도 있지만, 참고도서 가격 부담을 줄이려는 학생들이 줄을 잇
기 때문이다. 가격이 2∼3배로 오른 원서를 사지 못하는 대학원생들
도 한몫 거들고 있다.

● 서울대 도서관 대출량 60% 늘어
지난해에만 해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하루 대출-반납 실적은 6천
5백권안팎. 이 수치가 IMF 이후 급증, 지난 6월에는 평소보다 60% 이
상 늘어난 하루 1만7백여권을 오르내렸다. 고종근 출납실장은 "다른
대학 도서관들도 상황은 같다고 들었다"면서 "취업 재수생을 포함해,
'대책없이' 공부만 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IMF 이후 대학가 소비패턴도 많이 변했다. 학생들의 소비행태와
기호들이 너무 빨리 변해, 1∼2개월 사이 취급 품목을 바꾸거나 새로
운 업종을 선택하는 가게들이 늘었다. 최근 대학로·신촌 등 대학가
에는 5천원짜리 '남성 전용 미용실' 체인점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
다. 가격을 싸게 매긴 대신 스스로 머리를 감도록 했는데, '여자들
눈치도 안보고 돈도 아끼려는' 남학생들로 만원이다.

지난 1학기 숙명여대 앞 도시락집은 점심을 싸게 때우려는 여대생
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학교측이 마련한 국가고시반, 언론사 준비반
은 '입실 경쟁률'만 1백대 1을 오르내렸고, 지난 5월 수학여행철에는
38개학과중 25개 학과가 '여행 수준'을 낮추거나 취소했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박천일 교수는 "IMF 이후 학생들이 검소해
지고 실력 향상에 노력하는게 눈에 띈다"면서 "취업상담 태도도 달라
져, '어떤 분야가 유망하느냐'는 막연한 상담 대신 구체적 정보를 갖
고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의 '개성주의'는 날로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에서도 힙합 패션이나 반바지 차림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남녀 학생이 교내에서 허리를
껴안고 걷거나 무릎위에 앉는 것도 '뉴스거리'가 아니다.

● 여대에 스케이트보드 등장
안나윤(21·이화여대 철학과 2)양은 "요즘 학교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여학생들이 꽤 늘었다"면서 "교수나 교직원들이 뭐라고 말하면
'뭐 어떠냐'고 하는데, 대학에서 그 정도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
각한다"고 했다. 양미화(22·명지전문대 시각디자인과 1)양은 "구태
의연한 이데올로기나 도덕률은 개인주의보다 못한 것 같다"면서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고, 직접 책임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PC통신과 삐삐·휴대폰 등 개인 통신기기가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전화나 편지보다 이들을 통합하는 능력이 엄청나
게 크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학교 잔디밭이나 선술집이 아니라 PC
앞이나 삐삐, 휴대폰으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구세대와의
거리를 급속히 벌여놓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진태원 박사는 "요즘 신세대들은 어떤 유망한
집단에 속함으로써 인정받기 보다는, '나 하나만의 특징'으로 인정받
으려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는 고교시절까지 '집단'을 겪지 못한
상태에서 매스컴과 PC통신, 인터넷 등으로 서구 개인주의를 접하고,
그들끼리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이 사회봉사에 몰두하는 것은 80년대 '민중적 삶'과는 또 다
르다. 서울대 자원봉사단인 이웃사랑추진본부에는 지난해 2학기부터
봉사인원이 매학기 늘고 있다. 학점과 관련이 없는데도, 처음 70여
명이던 것이 지난 학기 1백20명으로 늘었고, 방학중에도 이 숫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자원봉사단 실무를 맡은 권지성(사회복지학과 대학원)씨는 "구청
사회복지관이나 공부방 교사로 자원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서 "단순히 '남도 돕고, 새로운 경험도 하고 싶다'는게 요즘 대학생
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세대들의 '단순 개인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고 말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는 "그간 기성세대가 이들
신세대를 개인주의로 부추긴 면이 없지 않다"면서 "사회와 고립된
개인주의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신세대들이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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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이성교제
자연스런 스킨십…"숨길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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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는 연애도 기성 세대와 다르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이성 문제에 대해서도 기성 세대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가장 큰 차이의 하나는 '신세대는 공공 장소에서
도 떳떳이 애정 표현을 한다'는 점이다. 남의 연애에 대해서는 무
관심하다는 것도 흔히 "누구누구가 사귄대" 하며 입방아를 찧던 기
성 세대와는 다르다.

요즘 대학 교정이나 공원에서는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하는 젊
은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연인이 손을 잡거나 허리를 껴안고 걸어
가는 모습은 물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한다.

서울대 대학원생 안태형씨(30)는 "몇년 전만 해도 남녀가 학교
에서 스킨십을 하면 화제였는데 이제는 이야기거리도 안된다"고 말
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누가 볼새라 어깨를 감싸안는
모습은 이제 부모 세대의 추억에만 남아 있는 것이다.

대학 교정에서의 이같은 애정 표현은 최근 들어 급속히 퍼졌다
는 게 학생들의 이야기. 20대 초반 학생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남
녀의 스킨십은 자연스런 일인데 왜 남의 눈치를 보고 숨겨야 하나"
라는 견해이다.

신세대 이성 교제에는 뒤끝이 없다는 것도 한 특징이다. 예전
연인과 친구 사이로 돌아가 가깝게 지내는 것은 물론, 자기 친구
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가끔 성관계도 가지던 서울의 한 대학 과
커플 남학생(23)과 여학생(22)은 얼마전 헤어진 뒤에도 계속 연락
하며 친한 선후배로 지내고 있다. 이 학교 4학년 정모(23·여)씨
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게 현대적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 바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여성
이모(21)씨의 한 동료 사내 커플은 얼마전 결혼을 발표하면서 "우
리는 임신 3개월"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상사들은 혀를 찼지만
신세대 동료들은 '축하한다'는 반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현상은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97년 광고대행사인 제일기
획 마케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47%, 여성의 31%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혼전 관계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는 기성 세대는 물론 10대 남성의30%, 여성의 17%보다도 훨씬 높
은 비율이었다.

물론 신세대가 문란한 이성 관계를 가지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벗
어나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대개 이런 추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성문란 등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합리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삼
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성도 박사는 "젊은이들이 연애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기성 세대
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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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만의 장소들
영어·일어 등 외국어 카페·PC방 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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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들의 개성만큼이나, 그들이 즐겨 찾는 곳도 다양해졌다.

일본어나 영어만 쓰는 '외국어 카페'가 있는가 하면, '개인주의'
를 반영한 PC방이 성업중이다.

신촌 연세대 앞 골목에 있는 '가케하시'는 일본어 카페다. 카
페 이름은 '가교'의 일본어 발음이다. 일본어 학원·출판사에서
일하던 김학산(34)씨가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한국어를 배우
는 일본 학생들과, 일본어를 배우려는 한국 학생들이 주 손님.카
페 안은 일본풍으로 장식했고, 메뉴판에는 한글과 일본어가 병기
됐다. 카페입구 게시판에는 두 나라 말을 가르치거나 배울 사람
메모가 가득찼다.

신촌 로터리 근처 '키세스 클럽'은 같은 개념의 영어 카페다.

처음에는 카페 안에서 영어만 쓰도록 하기도 했다. 매주 수·토
요일에는 영어자막 영화도 상영하고, 일요일마다 '콩글리시 클럽'
이라는 자유대화 모임도 있다. 이같은 외국어 카페들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늘고 있다.

PC방은 영어-일어 카페보다 먼저 생겼지만, 요즘 신세대 특징
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막걸리나 커피를 마시면서 2명 이상이
얘기하던 80년대와는 달리, PC방은 혼자 가도 인터넷으로 '세계
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고유의 ID로만 통한다. 2천원쯤이면
1시간동안 원하는 사람과 접속해 채팅이나 게임을 즐길 수도 있
고, 원하는 정보 검색을 할 수도 있다. 대학가마다 10∼20군데씩
성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