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8장 변경의 어떤 아침⑧ ##.

"아이구, 누님도 정말 극성이셔. 이 빗속에 서울서 여기까지…."
영희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김 상무가 벙글거리며 맞았
다. 도무지 걱정할 게 없다는 표정이요, 말투였다.

"내가 그냥 있게 됐어? 잘못하면 사기꾼으로 고발당하거나 생돈을 백
만원이상 물어야 할 판인데…."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이미 단장이 구속되었으니 전매자인 누
님이 사기로 고소당할 리는 없고오 하기야 전매해간 사람들이 울며불
며 달려들면 귀찮기는 하시겠지….".

"귀찮은 게 아니라 물어줄 수밖에 없다구. 나 이래뵈도 층층시하에서
시집살이 하는 사람이야. 우리집에 떼로 몰려들어 행패를 부리면 안 물
어 주고 당해낼 재간 있어?".

영희는 그러면서 새삼스런 후회로 모란단지 딱지에 손댄 일을 후회했
다. 김 상무의 권유도 있고 워낙 전망도 있어 보여 스무장을 모았으나
아무래도 일이 돌아가는게 미심쩍어 거의 본전으로 팔아 넘겼는데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그 요란스럽던 기공식이며 화려하던 개발위원 명단에도 불구하고 모
란단지 개발은 결국 아무런 행정적인 근거 없는 사기극으로 끝나고 말았
다.

그렇게 되자 휴지나 다름없이 된 이른바 '사 딱지'를 사들인 사람들
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특히 사들인 딱지를 다시 전매하지 않은 실
수요자들은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희에게 덤벼들었다. 또 한번 전
매가 된 딱지들도 언젠가는 전매된 선을 따라 영희를 찾아올 것임에 틀
림없었다. 모두들 아직은 경황이 없어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지만 머지
않아 시집으로 들이닥칠 것이고, 그리되면 영희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누님이 여기 온다구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늘 서울시장과
담판짓는 건 철거민들과 그 전매입주자들인데…."
"아냐, 다 한끈에 묶인 일이라구. 아무리 개인이 벌인 일이라지만 피
해자가 8천가구라면 이미 그건 개인에게 맡겨둘 수 없는거야. 이쪽 처리
방식을 보면 모란단지 쪽의 해결방식도 가닥이 잡힐테지.".

"그거야 누님이 오시지 않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제 보니 김 상무 정말 속 좋은 사람이네. 나보다 열배는 더 험하
게 얽혀 있으면서 남의 일처럼 말을 하니… 하긴 나 하나 나서봐야 별것
없지만 그래도 머릿수로나마 이쪽에 힘을 실어줘야 할 거 아냐? 여기서
힘을 보여줘야 저쪽도 만만히 보고 함부로 나오지 못할거 아니냐구.".

"그럼 데모하러 서울서 예까지 오신거예요?"
"데모해서 될 일이라면 데모라도 해야지.".

"하, 정말 대단하시네. 그렇지만 그거라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없는 사람들 뭉친 힘이라면 오늘 서울시장 신물나도록 맛보게
될 걸요.".

그래놓고 김 상무는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전단들을 한줌 집어보이며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