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난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법칙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만일 그림 그리는 법칙을 쓰려면 一筆도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 글은 추사 김정희가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최북이는 북으로 흑삭(흑룡강)을 거쳐 숙신(만주벌)까지
들어갔고/ 동쪽으로는적안을 지나 일본까지 갔었다네/ 귀한 집
병풍으로는 산수화를 치는데/ 안견, 이징의 작품들은 비로 쓸듯
없어졌네/ 술에 취해 미친 듯이 붓을 휘두르기 시작할 요량이면 큰
집 대낮에 산수풍경 생겼더라」 신광하가 시형식으로 최북이라는
화가의 전기를 쓴 『최북가』의 일부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그림에 대한 화법과 감상, 평을 주제로 시도
짓고 편지도썼다.
미술사가 유홍준씨(영남대 교수)가 이같은 우리 선조들의 화론을
정리, 『조선시대 화론연구』라는 책자를 펴냈다.
유씨는 이 책 서문에서 『조선시대 화론은 화론다운 화론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는 통설을 전하며 『누구누구의 화론이라는
말대신에 회화관이라는 궁색한 표현을 곧장 사용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은 따지고보면 한국화론 그
자체의 빈약함보다도 그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진단이다.

이 책은 전 2부로 이뤄져 있다. 제 1부는 「조선시대 화론의
제형식」으로 꾸며져 화론의 개념과 범주에 관한 서문에 이어
조선시대에 전개됐던 화론들을 그 형식에 따라 분류, 그 실례들을
풍부하게 원문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오세창의
『근역서하징과』과 고유섭의 『조선화론집성』으로부터 시작해
문인, 학자들의 論, 序,記, 跋을 비롯 題, 詩 나아가 만록, 행장, 묘지,
애사, 서간 등 각종 문헌이 다양하게 실려있다.

제 2부 「조선후기 화론연구」는 1부에서 제시된 여러 형식에 담긴
논의들의 실례들을 예시하고 그 핵심이 무엇이었는가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조선후기는 재론의 여지없이 우리 문화사상 가장 찬란했던
문예부흥기였고 정치,사회제도와 산업,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함께 그 성가를 높였던 때였다. 이때화론도 활발하게
꽃피었다.

이전 시대와 대별되는 조선 후기의 문예사조를 유씨는
사실정신으로 압축하고있다. 중국적 이념을 모든 제도와 문화의
모범으로 했던 이전 예술양식에서 벗어나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중국과 다른 우리 산천과 사람들을 그리고
노래하려는사실정신이 싹트게 된 것.

그것이 회화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 조선적 형식의 완성이라
불리는 진경산수와 풍속화인데 당시의 화론 또한 철저히 사실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조선후기의 사실론은 단순히 외형적
형상의 닮음을 강조하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피사체의 내면적
진실성까지를 요구하는 傳神論을 아우르면서 전개됐다는 것이다.

유씨는 조선 후기에 전신론적 입장에서 화론을 펼친 남태응 윤두서
조귀명 권헌이규상 심재 박지원등과 사실론적 입장에 서 있는
이하곤 조영석 이익 강세황 정약용등의 글들을 함께 실었다.

유씨는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성균관대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영남대 박물관장, 문화재 전문위원이며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 서서』
『정직한 관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