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하야결심 ##.

강영훈 6군단장은 시위대가 몰려와도 안전할 곳이 어디일까 곰곰 생
각하다가 1개 예비연대 주둔지에 있는 부군단장 숙소를 생각했다. 호수
와 숲이 있는 그곳이 이기붕 일행이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 데도 좋을 것
이라고 판단되어 이기붕과 의논했다.

"한 30분쯤 더 가시면 1개 연대가 있습니다."
"아, 군단장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시오.".

강영훈은 이기붕 일행을 직접 안내하여 부군단장 숙소로 갔다. 그곳
에 가서 보니 이곳도 안전에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병
들 중에는 대학재학중에 입대한 복무기간 1년반짜리 '학보병'이 많았다.
이들은 시위 학생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므로 서울에서 시위대
가 몰려오면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숙소로 돌아온
강 군단장은 미1군단 포병사령관 숙소가 생각났다. 다음날 오전 강영훈
은 출장간 1군단장을 대리하던 부군단장 샌더스와 의논하러 갔다. 그는
냉담했다.

"그 사람 문제에 왜 강 장군이 앞장서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강
장군이 이기붕을 도피시켰다는 정보가 들어왔었다. 이 일은 계엄사령관
이할 일이다.".

"그 사람은 바쁘다. 책임선을 따질 일이 아니라 우선 해결해놓고 볼
일이다.".

"다른 군단장에게 그 사람을 맡으라고 해보지.".

26일 아침 1군 사령부에서 군단장 회의가 열렸다. 강 장군이 이기붕
건을 설명했더니 모두들 "아이구, 강 장군 입장이 어렵게 되었구나"란
반응이었다. 민기식 부사령관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지금 이기붕 가족한테 우리나라 팔도강산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나? 그 사람에게 길은 딱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자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으로 망명하는 거야.".

유재흥 1군 사령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송요찬계엄사령관에게 전
화를 걸어 하명을 청했다. 송 장군은 "생각 좀 해보자"고 하더니 감감소
식이었다고 한다.

이날 아침 김정렬 국방장관은 국방부에서 중앙청으로 향하는 길에
도심으로 몰려들고 있는 거대한 시위인파를 보았다. 국회결의에 의해서
26일 오전5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경비계엄으로 완화될 예정이었다. 김
장관은 시위를 막으려면 비상계엄을 연장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중앙
청 국무회의실을 나와서 경무대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직원이 달
려오더니 "미국 대사가 전화를 걸어 왔다"고 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서 수화기를 들었다.

"이 대통령을 뵙자고 하니 장관께서 알선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직접 경무대로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수차 비서실로 연락을 했는데 승낙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기회를 봐서 진언하겠습니다.".

김 장관이 경무대에 들어가니 이승만은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잘잤나?"하고 말하는 것이, 지금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모르
는 것 같았다. 김 장관이 집무실로 따라들어가 지금 급박해지는 상황을
보고했다.

이승만은 "그래, 오늘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라고 당부
했다. 대통령은 잠시 회상에 잠기더니 "어떻게 하면 좋은가"하고 물었다.
김 장관이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대통령은 다시 "어떻게 하면 좋은가,말
좀 해봐!"라고 했다. 김정렬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무
의식중에 '각하, 저희들이 보좌를 잘못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
니다'라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회고록).

대통령은 김정렬의 어깨를 꼭 껴안고 "대장부가 이렇게 어려울 때
이게 무슨 꼴인가"하더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자문했다. 한참후에
대통령은 이렇게 입을 뗐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

너무 중대한 말이라 김정렬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은 재
차 김장관의 어깨를 흔들면서 물었다. 김 장관은 말없이 머리를 조아렸
다.

"그래, 그렇게 하지. 이것을 속히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하
지?"
"성명서를 만드셔서 방송하도록 하면 되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박찬일 비서관을 부르더니 "자네 둘이서 성명서를
만들어보게"라고 했다. 박찬일 비서에게 김 장관은 성명의 골자를 불러
주었다. 하야한다는 것, 선거를 다시 한다는 것, 내각책임제로 개헌한다
는것. 박 비서관이 이를 받아쓰려고 하자 이승만이 나섰다.

"자네들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네. 내가 부를 터이니 받아 쓰게.".

이승만은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잘 지냈으니, 이제 세상을 떠나도 원한이 없다"로 시작되는 성
명서의 요지를 구술하기 시작했다.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들어왔다.김 장
관이 지금까지의 경과를 귀띔해주었다. 이승만은 송 장군에게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하고 물었다.

"예, 지금 국방장관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하께서 그만두
시면 사람은 다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찬일이 구술받은 성명서를 낭독하자 송요찬은 "이기붕 의장이 공
직으로부터 떠난다는 대목을 첨가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도 승낙했다. 조금 있다가 송요찬이 시위학생 대표 다섯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하야 성명문이 정서되는 사이 이 대통령은 후원에서 이들을
만났다. 고려대 정치학과 학생 유일나가 "각하께서 하야하는 길만이 나
라를 구하는 길입니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어떻게 하라고?"라고 되물
었다. 옆에 있던 곽영주가 이 박사의 귀에 대고 영어로 "스텝 다운(Step
Down)"이라고 했다.

"또 날더러 저 하와이나 외국으로 가서 살란 말인가."
"국민이 원합니다.".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가야지. 이 나라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가야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