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은 듯한 플레이로 밀착수비 따돌린 뒤 찬스 나면 '회심의 한방' #.
새로운 '축구황제' 호나우도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이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 단연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이 치룬 스코틀랜드전과 모로코전에서 호나우도가 볼을 잡은 건
몇차례 되지 않았다. 상대 왼쪽 진영을 헤집고 다니는 카를로스나 수비수
둥가와 비교하면 있는 듯 없는 듯 할 정도. 그러나 호나우도는 모로코전
에서 1골 1어시스트로 브라질의 3대 0 완승을 주도했고, 개막전인 스코틀
랜드전에서도 환상적인 드리블과 대포알같은 슈팅을 선보이며 뚜렷한 인
상을 남겼다.
프랑스의 스포츠전문지 '레퀴프'지는 "호나우도는 마치 혼자서 다른
경기에서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보도했다. 호나우
도의 '은인자중형' 플레이는 이전의 스타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
다.
축구팬들은 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영웅 마라도나가 전후반 내내 그의
발끝으로 아르헨티나를 이끌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또 74년 당시 서독
이 월드컵을 제패할 때 베켄바워는 공수 양쪽에 모두 가담하며 팀이 위기
에 빠질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최연소인 17살의 나이로 참가했던 펠레도 그랬다.
◆ "21세기형 스트라이커의 면모 보인다".
현 브라질 대표팀의 기술고문인 지코는 호나우도의 플레이에 대해 못
마땅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가장 뛰어난 선수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많이 움직인다면 동료들에게 더 좋은 찬스를 만들어
줄수 있을 것이다.".
호나우도는 최전방 공격 투톱을 이루는 베베토와 호흡을 맞추려는 노
력도별로 보이지 않는다. 둘이 함께 공격 라인을 형성하며 수시로 상대가
공략하는 반대편을 노리든가 2대1 패스로 골문을 공략해 들어가는 몸짓도
보기 힘들다. 호나우도와 베베토는 서로 상대를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움
직이는 '투톱의 기본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이는 94년 미국 월드컵 우
승 주역인 호마리우·베베토 투톱과 비교할 때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호
마리우와 베베토는 끊임없이 함께 움직였다.
이에 비해 호나우도는 베베토와 관계없이 지나칠 정도로 폭넓게 움직
이고있다. 상대 수비와 골문 사이를 노리거나, 공격 2선에서 히바우도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호나우도의 이런 스타일에 대해 '21세기형 스트라이커의 면모'
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 축구는 상대의 최
고 공격수를 집중 마크하며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
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결정적인 파괴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호나
우도는 18살의 나이에 네덜란드의 프로 무대를 시작으로 스페인, 이탈리
아를 거치면서 '코스모폴리탄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는 분석
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호나우도는 모로코전에서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플레이를 했음
에도 축구화로 허벅지를 찍힌 뒤 그라운드에 누워 있어야 했고, 트렁크가
찢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호나우도가 마련한 생존 전략이 경기시간 대부분을 보통 선수
처럼 위장한 채 은인자중하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나오
고 있다. 땅에 있을 때는 어설퍼 보이는 새가 창공으로 날아갈 때 장엄한
날갯짓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물론 이같은 독특한 스타일은 호나우도가 경이적인 스피드와 파워를 갖
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프랑스의 한 트레이닝 코치는 흥미로운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스트라이커들이 볼을 잡고 3∼4초 동안 전력 질주할 수 있
는 반면 호나우도는 무려 8∼10초 동안 달릴 수 있다. 그것도 가장 빠르
게….".
여기엔 자갈로 브라질 감독도 동의한다. "호나우도는 골을 향한 가장
짧은 길을 알고 있는 선수다." 호나우도가 한때 몸담았던 스페인의 명문
클럽바르셀로나의 매니저인 보비 롭슨은 심지어 "호나우도는 볼을 가지고
뛰는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빠르다"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 득점왕 꿈 버리고 팀 우승 위해 노력
호나우도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순간 정지 동
작에 있다.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어도 골문을 지나서까지 달려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게 축구이기 때문. 호나우도가 모로코전에서 이번 대
회 첫골을 올리는 장면은 그의 '무한 질주와 급제동' 능력을 생생하게 보
여줬다. 상대의 일자 수비를 피하기 위해 약간 위쪽에 있던 호나우도는
패스가 날아오는 순간 약 10발짝을 질주한 뒤 그대로 정지 동작을 취하면
서 폭발적인 슈팅을 날렸다. 엄청나게 튼튼한 관절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호나우도는 또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을 역이용하는데도 발군이다. 수
비에등을 댄 채로 상대의 탄력을 이용해서 돌아 들어가는 방법으로 완벽
한 단독 찬스를 만드는 호나우도의 능력은 다른 스트라이커들과 두드러진
차이를 나타낸다.
호나우도는 모로코전에서 베베토가 올린 팀의 세번째 골을 완벽하게
어시스트했다. 수비수가 놓친 볼을 뺏자마자 유연한 페인팅으로 수비 2명
을 따돌리고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침착하게 베베토에게 패스했다. 경기
시간 대부분 베베토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호나우도는 결정적인 단 한번의
순간에 완벽한 투톱 플레이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호나우도의 이런 방식은 그에게 걸었던 다양한 기대를 접게
하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은 호나우도가 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데미
르가 9로 득점왕에 오른 뒤 48년만에 브라질 출신의 득점왕 등극을 점쳤
다. 또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퐁테느가 올린 한 대회 최다 득
점 기록인 13골도 돌파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호나우도는 자신의 득
점왕 기록보다는 브라질의 우승을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 같다.
70년대 중반 당대 최고의 스타로 평가받았던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
프는 우승컵을 서독에 빼앗기면서 축구 황제의 자리도 베켄바워에 넘겨줘
야 했다. 호나우도는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호나우도와 함께 대회 MVP와 득점왕을 노리는 후보들
의 도전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아르헨티나의 바티스투타. 독일의 클린스
만. 잉글랜드의 시어러는 모두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한골씩 올렸다.여
기에 이탈리아의 비에리가 3골을 올리며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는 호나우도가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며
진정한 축구황제에 등극할 수 있을 지에 전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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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대회 '레드카드' 만발
엄격한 룰 적용…감독들 전전긍긍.
호나우도 못지 않게 프랑스 월드컵을 상징할 단어는 '레드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대회전부터 백태클엔 가차없이 레
드카드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대회 초반 이 룰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하석주의 백태클이 대회 1호로 기록되지만 한국·멕시
코전은 9번째 경기였다. 하석주의 태클 못지 않은 위협적인 행동과 태클
은 앞서 열린 경기에서도 많았다.
그 뒤로도 레드카드감에 해당하는 플레이가 속출했지만 심판들은 레드
카드 대신 옐로카드를 빼들었다. 그래서 '축구 약소국'인 한국만 억울하
게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블래터 FIFA 신임
회장과 플라티니 조직위원장이 "심판들의 판정이 엄격하지 않다"고 경고
하면서 양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6월 19일은 축구 그라운드가 가장 붉게 물들었던 날로 기록될 것이다.
단두 경기서 5명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프랑스와 사우디가 각각
1명씩 퇴장당했고, 덴마크·남아공전에선 덴마크 2명, 남아공 1명이 퇴장
당해 9대10의 대결을 벌이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덴마크·남아공전은 62년 칠레·이탈리아전에 이어 최악의 경기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벌어진 이 경기는 초반부터 상
대선수에 침을 뱉고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거친 몸싸움 끝에 2명이 퇴장
당한 이탈리아가 0대2로 패했다. 칠레의 산체스는 왼쪽 주먹으로 이탈리
아선수의 코뼈를 부러뜨렸으나 심판 등뒤에서 저지른 탓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부터는 주심이 보지 못한 반칙을 부심이 '삐삐'로 알
려 줄 수 있는 장치까지 등장, '눈속임'도 통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선수가 언제 퇴장당할 지 알 수 없는 각 팀의 감독들은 10명 혹
은 9명만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제2의 전술'을 준비해야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