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 고문' 파문에 DJ 개입설도 ##.
김만제 전 포철회장의 '한전 고문 3일 천하' 파문으로 자민련 박
태준 총재(TJ)와 김 전회장의 '기구한 인연'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포철 창업자와 그가 필생을 통틀어 '가장 불행했던 시절'에 포철
을 맡아 화려하게 움직였던 김 전회장의 관계는 새 정부 들어 몇차
례 관심의 촛점이 됐다.
첫번째는 김 전회장이 포철회장 직에서 물러날 때고, 두번째는
자민련에서 일부 당직자들이 6.4 지방선거의 대구시장 후보로 김 전
회장을 영입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리고 이번이 세번째다.
그러나 세차례 모두 박총재가 김 전회장의 앞길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물론 대체로 맞다. 박총재는 김 전회장에게 감정이 좋지
않으며,공기업을 맡기에 부적절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인간
적으로도 몇가지 감정이 틀리는 사건들이 쌓였다. 박총재가 건재하
면 김 전회장에게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김 전회장은 이같은 관계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눈치이지만, 박
총재쪽에서 '용서'를 못하겠다는 것 같다. 김 전회장이 의도적으로
했건 아니건 박총재가 받은 직간접적인 상처가 너무 큰 모양이다.
● 포철의 `TJ 흔적 지우기'에 반감
그런데 새 정권들어 두사람 관계의 막후에는 다른 힘도 작용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김 전회장에게 좋은 감정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 인사 파문에서 최종 결정은 박총재가 아니라 김대통
령이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새 정권의 실세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김대통령이 당선된 직
후 배포된 비즈니스 위크의 김 전회장 인터뷰 기사다. 김 전회장은
이 기사에서 "김대중은 원맨쇼로 살아왔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
는 선언에는 매우 능하지만 실행에는 매우 약할 것이라는 점이다(Kim
Dae Jung has been a one-man show, says Kim Mahn Je. My worry is
that he will be very good in announcements but very weak in
implementation.)"라고 직접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영어에 능통해 영어로 직접 인터뷰하는 김 전회장으로서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로 유명한 기사다.
'TJ-MJ(김만제 전회장의 이니셜)' 관계는 지난 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입법회의에서 박총재가 경제1위원장을 하고 있을 때 KDI원장으로
간사로 파견돼 처음 만났다. 박총재는 김 전회장의 일솜씨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후 재무장관으로 부실기업 정리하는 것을 보고
평가는 더욱 높아졌고, 92년에는 당시 박총재가 관리하던 민정계 케
이스로 강남을에 공천을 줄 정도였다. 박총재는 당시 거액의 선거자
금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는 94년 3월 김 전회장이 포철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그대
로 갔다.
당시 일본에 머무르던 박총재는 김 전 회장 취임에 맞춰 "경제를
잘 알고 뚝심있고 무엇보다 자기 이름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는
덕담까지 전했다.
그러나 이 덕담이 두 사람간 좋은 관계의 마지막이 됐다. 박총재
는 김 전회장이 포철에서 '제철보국' '애국심' '헌신' 같은 박태준
적인 요소를 빼면서 '세계형' '기업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고 의
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전임 경영팀처럼 박태준 인맥을 치고
액자를 뜯어내고 하는 식의 눈에 보이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고차
원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뿌리부터 없애려는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김 전회장이 포철 경영자로 작심하고 시작한 생산 설비 증설도
두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박총재가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시장, 미래까지 내다보며 적정한 수준으로 조절해
놓은 수급구조를 비전문가인 김 전 회장이 손을 대 마구 흔들었다는
것이다.
박총재 측은 그 근저에 '철강에서 박태준 보다 김만제가 더 낫다'
는 평을듣고 싶어하는 공명심과 김영삼 당시 대통령 및 김현철 씨등
의 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박총재 측은 당시 김 전 회장에게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여러차례 이를 막으려 했다. 사장이나 부사장들에게 "회장이 기술적
인 문제는 모를 것이고 기술자인 당신들이 알아서 막아야 할 것 아
닌가"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회장이 워낙 강하
게 밀어부쳐 무위로 그쳤다.
박총재는 이 일이 "포철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 철강업을 망
쳤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 김 전회장 측 반론도 만만치않다. 박총재가 포철
창업자로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김 전 회장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경영혁신을 선도했다는 것이다. 포철이라고 꼭 박태준 식으로만 해
야 하며 다른 경영이념은 안된다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경영 성과가 있는지는 지수로 말하는 것인데 김 전 회장이 맡았
던 시기에 포철의 순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매년 경신했고, 95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뉴욕증시에 상장됐으며, 96년에는 비선진국 출신
으로는 최초로 세계철강협회장에 올랐으며, 97년에는 순이익이 국내
기업 중 최고를 기록했다. 무디스 등의 신용평가에서도 우리나라 평
가 등급과 같은 급을 받았다고 한다.
김 전회장이 경영을 잘못했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겠느냐
는 것이다.
어쨋든 두사람 관계가 틀어진 것은 95년 가을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총재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내가 김만제 평가를
잘못했다' '포철경영이 상당히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포문
을 열었다.
본질 부분이 틀어지자 인간적인 틈새도 자꾸만 벌어졌다. 95년말
박총재측에 김 전 회장이 동경을 방문하는데 세배를 드리고자 한다
는 뜻이 왔다. 약속은 96년 1월 5일 박총재의 14평짜리 아파트로 정
했다.
당시 '박총재가 포철에서 물러나기 직전 거액을 챙겨 신일철(신
일본제철)에 맡겨놓고 지금은 호화판으로 살고 있다. 14평 아파트에
서 궁색하게 운운하는 것은 다 쇼다'라는 루머가 퍼져 있었는데 직
접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 "YS 심기 살피며 나름대로 도왔는데…"
문제의 아파트는 지금도 박총재가 가끔 언급하는데, 덩치 큰 사
람은 절을할 공간이 없어 엎드리다 말고 '회장님이 왜 이렇게 고생
하셔야 하느냐"며 쓰러져 펑펑 울기도 했다는 그 아파트다. 조영장
실장, 축구선수 최순호등이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약속은 점심 때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박총재는 당시 겉
으로는 '왜 온다지' 하며 짐짓 내키지 않는 것처럼 했으나 내심으로
는 많이 기다렸다고 한다. 확인 결과 청와대에서 노발대발하며 못만
나게 해 약속을 취소했다고 하는데, 박총재측은 사람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11월 박총재는 서울에서 두가지 행사를 했는데 여기서 더
앙금이 쌓였다. 운경상 산업기술 부문상 수상식에 박총재가 포철 창
업자 자격으로 상을 받게 됐는데 포철 사람은 한사람도 안왔고 이틀
뒤 박총재 집에서 치러진 7순 잔치에 김회장이 임원들과 오기로 했
다가 역시 오지 않았다.
그무렵 박총재의 측근 C씨와 포철 임원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
가 오갔다고 한다. "만나자"(임원) "만날 것 있나. 전화로 해라"(C
씨) "김회장 전언이다. 당신을 불러 꼭 전하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더라. 김회장은 TJ를 잘모시고 싶어한다. 그런데 TJ 태도 때문에
못하고 있다. 앞으로 TJ께서는 절대로 YS 비판을 말아달라. 또 잘하
든 못하든 포철 경영에 대해 언급을 삼가달라. 그러면 생활비를 지
원할 용의가 있다."(임원) "그런 얘기라면 내가 안 전한다. 내 얘기
라 그러고 전하라. 박회장이 김만제한테 돈달라고 얘기한 적 없을
뿐 아니라, 모래땅에 혀박고 죽으면 죽었지 그런 돈 안받는다. 잘
살든 못살든 우리가 알아서 모실테니까 염려하시지 말라 그러라. 또
이따위 소리하면 정말 가만있지 않는다."(C씨) 분위기는 점점 살벌
해졌다.
김 전 회장은 박총재 사람들을 챙기느라 나름대로 애를 썼던 것
으로 전해졌다. 대표적 TJ 사람인 황경로 전 포철회장도 연구소회장
으로 앉혔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현철씨의 심기를 살피며 나름대
로 도울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십년 쌓인 박태준 인맥의 마
음을 잡는데는 역부족이었던 것같다.
실제 박총재 본인은 김 전회장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
으로 알려졌다. 이번 김만제 전 회장의 인사 파문 때도 그는 한번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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