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이탈리아 볼로냐의 한 저택에 청색바탕에 황금빛 별이
빛나는 EU(유럽연합) 깃발이 게양됐다.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담
을 마치고 귀국한 로마노 프로디 총리가 이탈리아의 EMU(유럽 통화동
맹) 재가입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사저에 깃발을 내건 것이다.
EMU 재가입이야말로 지난 96년 5월17일 전후 55번째 총리로 취임
한 프로디의 최대 공약이었던 만큼 남다른 감회를 느낄 만했다.
2년전 프로디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EMU 재가입에 실패하면 사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실현 불가능한 무모한 목표"라는 냉소적인 반
응이 대부분이었다.
경제학자 출신 프로디 총리는 자신의 정당조차 없는 인물. 독자적
인 세력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그는 역대 내각의 평균 수명이 1년 미
만인 이탈리아에서 또 한명의 단명 총리로 끝날 공산이 컸다.
그러나 그는 취임 이후 중앙은행 총재출신으로 총리를 역임했던
카를로 참피 재무장관, 람베르토 디니 외무장관과 호흡을 맞춰 과감
한 재정개혁을 이룩해냈다. 지난 96년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했
던 예산적자 규모를 지난해엔 2.7%로 줄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지
속적인 개혁 추진을 약속하면서 EMU 재가입을 위한 EU 동료들의 지지
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프로디 총리는 또 소매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은행 합병을 통한
금융산업 개편과 자율화, 국영기업 민영화, 고위공무원 임기계약제
등 이탈리아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거대한 개혁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에도 두번이나 연정 붕괴 위기를
겪었다. 97년 4월엔 알바니아 파병안과 관련, 의회 신임투표를 거치
는 곤욕을 치렀으며, 10월에도 98년 예산안이 공산재건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사임의사를밝힌 뒤 협상을 통해 5일만에 위기를 수습하기도
했다.
프로디 총리의 어려움은 그 자신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면서 좌
파세력을 기반으로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모순 때문에 더
가중되고 있다.
공산당 후신인 좌파민주당이 집권 연정내 최대 정당이며, 연정에
속해 있지 않은 강경파 공산재건당의 지원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지난해 예산안 파동때는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과 연금개혁
완화 등의 정치적 타협을 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면서 협상과 타협
을 통해온건한 개혁을 추진하는 프로디 총리에 대해 이탈리아 국민들
은 친밀감을느끼고 있다. 라 스탐파지의 로마지국장인 마르첼로 소르
지는 "프로디는 많은 부분에서 평균적인 이탈리아인을 대표하고 있다"
며 "이 점이 그의 강점이다"고 말했다.
프로디 총리는 지난 4월22일을 기해 이탈리아에서 전후 세번째 장
수 총리의 기록을 세웠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집권할 수 있을지
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역대 총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