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세기직업전문학교 4층 자동차정
비반. 칠판에 걸린 차트에는 엔진 설계도면이 그려져 있다. 푸른 작
업복을 입은 수강생들은 강사의 손끝을 따라 부지런히 필기를 하고
있다.

"작년 12월 31일자로 해고됐습니다." 김영호(가명·37·경기 구리
시)씨 등 6개월코스 정비반의 수강생 43명은 모두 실직자들이다. 이
들이 재취업교육을 받는 이곳에는 도배반 등에 50여명이 더 있다. 김
씨는 모 정수기업체에서 근무하다 정리해고됐다. "책상에서 펜대만
놀리던 제가 스패너나 렌치가 뭔지 알겠습니까? 먹고 살겠다는 각오
로 덤비는 거죠.".

이들은 우리나라 실직자군의 표본인 듯 다양한 직업출신이었다.은
행, 전자업체, 출판사, 건설사, 무역회사…. 기관정비 실습시간에 기
름때를 묻히며 엔진분해작업을 하던 이명희(45·여)씨. "정비를 배운
다니까 주변에서 '미쳤냐'고 하더라"고 했다. "뭐라도 해서 먹고는
살아야죠." 외환은행 상도동지점 과장으로 명예퇴직한 이씨는 정비반
의 유일한 여성이다.

2일 오전, 김모(34)씨가 아침부터 텅빈 교실에서 기관정비 참고서
를 뒤적이고 있었다. 이곳 기숙사에서 4개월째 지내는 그는 은행원이
었으나 '구조조정'됐다. 그는 "교육이 끝나도 뭘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후 2시 점심시간. 몇몇은 외출을 하고 간단히 구내식당에서 식
사를 마친 사람들이 교실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육을 함께
받으며 친숙해진 사이지만 이들은 바로 전 직장이 무엇이었는지, 앞
으로 뭘하고 살아갈건지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오후 5시, 하루수업을 다 마친 이들은 저마다 기관, 전기, 차체등
과목별로 요약 정리된 노트를 한아름씩 안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곳에선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못견뎌요. 그냥 하루하루 자
격증 시험에 대비하며 시름을 잊는 거죠." 고수노 원장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