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강남 A고교 점심시간. 대부분 점심을 거른 교사 98명
이 시청각실에 모였다. 곧 불이 꺼지고 비디오가 켜졌다. 화면에는 '대
통령 말씀'이 한시간동안 상영됐고, 교사들은 꼼짝없이 이를 지켜봐야
했다. 일부 교사들은 "군사정권때도 없었던 강압적 교사교육"이라며 불
참했다. 이 학교는 교장 재량으로 이날 '교육'을 위해 원래 12시40분∼
1시30분이던 점심시간을 12시15분∼1시15분으로 조정했다.

이 비디오는 지난달 27일 김대중 대통령이 1∼3급 고위공직자 6백명
을 모아놓고 강연한 '고위 공직자와의 대화'. 공직자 경쟁력 향상과 경
제난 극복을 호소하는 대통령 육성을 담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17일전 중앙부처에 공문을 보내, 3급 이하 모든 공무원들에게 경제난,의
식개혁 관련 교육을 하고 그 결과를 6월15일까지 보고토록 했다. 비디오
시청은행자부가 예시한 교육방법중 하나였다.

교육부 지시를 받은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일 부교육감 이하 전직원이
한데 모여 80분간 비디오를 시청했고, 보건복지부는 22일 직원 4백여명
을 3개조로 나눠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교육'을 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내달 1일로 비디오시청 일정을 잡아놓았다. 다른 정부 부처들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하지만 뜻이 좋다고 모든 것이 다 좋을 것이라고 해서는 곤란할 듯하
다. 서울 한 고교교사 이모(59)씨는 "교사들을 모아놓고 대통령 연설테
이프를 보라는 것은 관료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한 6급 공무원도
"이미 언론에 보도된 걸 왜 또 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공무원들
사이에서 간접선거운동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말도 돌고 있다"고 전
했다. 행자부도 이를 의식한 듯, "공문에 '선거때는 중립에 유의하라'고
적었다"며 "국정 최고책임자의 뜻을 모든 공무원들이 알아야 한다는 취
지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과 행자부의 뜻과는 무관한 '뒷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A고교
와 비슷한 풍경이 5월 내내 전국 정부 관서에서 계속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