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는 18일 저녁 중견 언론인들의 친목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 당선되면 시행할 시정 방향을 밝히고 자신의
전력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고 후보는 자신과 둘째아들의 병역시비, 수서사건
관련 등에는 비교적 자신감있게 '방어논리'를 폈다. 그러나 91년2월 서울시장을
물러난 뒤 "민선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 87년 내무장관 시절
"6·10대회(87년 6월항쟁을 의미)는 일부 야당정치인과 좌경세력이 주축이 된
불법집회"라고 규정한 발언 등의 소신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 "정부 공식입장" 등으로 곤혹스럽게 해명했다.

정권때마다 승승장구했다. 처세의 달인, 변신의 달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행정 테크노크라트를 자처하면서 공직에 봉사했다. 정당출신이 여러 정권에
봉사한 것과 직업공무원 출신이 그런 것은 가치판단이 달라져야 한다."

수서사건 때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아 결국 서울시 공무원들의 희생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있는데.
"수서때 명확히 불가입장을 세 번 밝혔다. 끝까지 안된다고 해서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것이다."

80년 5·18 당시의 잠적설, 그 후 관직 취임 등을 보면 난세는 피하다가 힘의
구도가 정리되면 나온다는 지적이 있다.
"5·17때 비상계엄이 확대되는 것은 군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어
사표를 냈다. 그 후 헌정체제로 돌아온 뒤 내 본업인 행정을 맡으라고 해서 맡게
됐다."

87년 6·10항쟁을 불법집회로 규정했던 소신에 변함이 없나.
"기억은 안나지만 대외적으로 내놓은 정부의 공식입장이었다. 불법집회라는
것은 치안당국자로서의 얘기다."

외환위기에 대해 총리로서 책임있는 것 아닌가.
"총리는 경제정책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62년 군입대 영장을 대기하다가 보충역에 편입될 때 어떤 기준이 적용됐나.
그리고 둘째아들의 병역면제 사유를 밝혀달라.
"5·16 군사정부 때 내각사무처의 임용통보를 받고 62년 2월 발령을 받았다. 그해
10월 개정된 병역법 부칙에 의해 보충역으로 편입됐다. 아들은 대학원 재학 때
현대사회적인 병이 생겨 면제됐다. 10년이 지난 현재도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시 직원들은 고 후보에 대해 현상유지에 능하고 개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한다.
"감히 정부에 있는 개혁주의자라고 말하겠다. 지하철 5∼8호선 계획을 구상하고
착수하고 예산을 확보한 것은 열정없이는 안된다."

시장 재임때 위원회가 많이 늘었는데 최고 책임자의 책임과 역할을 줄이기 위한
것 아닌가.
"정책회의는 밀실행정시대를 끝내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