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음악의 아버지인 洪蘭坡(본명
永厚.1898-1941)가 올해로 탄신 1백주년을 맞았으나 별다른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음악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음악계는 蘭坡의 탄신일인 4월 10일을 전후해 제30회 난파 음악제와 난파
탄신1백주년 기념 대음악회, 난파가곡발표회 등을 개최했으나 행사가 주로
蘭坡의 고향인경기도에서 열린 탓인지 전국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경기도와 난파기념사업회 등은 올 하반기에 蘭坡의 삶과 음악세계를
재조명하는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며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는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생가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蘭坡는 근대음악의 개척자답게 이력에 「최초」라는 단어를 줄줄이 달고
있다. 최초의 가곡인 「봉선화」를 작곡했는가 하면 국내 최초의
음악평론가이자 지휘자이기도했다. 또 한국 최초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각인돼
있으며 국내 최초의 관현악단을 창단하고 최초의 음악잡지를 발행하는 등
음악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중 최초의 가곡 「봉선화」는 1925년 음악잡지인 에 실렸던
곡.

蘭坡는 1920년 자신의 창작곡집 에 게재했던 바이올린곡 「애수」에
정신학교음악교사였던 김형준 씨가 지은 시를 붙여 새 가곡으로 탄생시켰다.
그가 일생 동안 지은 가곡은 「봉선화」 등 16곡에 달하며 동요 1백여곡과
대중가요 14곡도 남겼다.

蘭坡는 친일파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때 이미지가 탈색되기도 했으나
唱歌에서현대 가곡으로 넘어오는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적
역할은 지대한것이었다.
宋泰玉 예총 경기도지회장은 『한국의 樂聖이었던 蘭坡는 일제의 압박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에게 음악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었다』면서 『44세라는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젊음을
음악에 바쳤던 그의 의지와 신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宋 지회장은 『특히 「봉선화」와 「봄처녀」 「고향의 봄」은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주옥편으로,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후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蘭坡 탄신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음악세계를 담은 책(삶과 꿈)을 최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