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고건 서울시장 후보는 노태우 정부 중반부인 88년 12월부
터 90년 12월까지 2년간 서울시를 맡았다. 평소 '현장 행정'을 중시했
고,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를 실천하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 업적
의사결정을 시장 단독 결정에서 집단 의사결정으로 바꿨다. 취임후
6개월동안 약 1백여곳의 달동네중 30여곳을 직접 방문, 소방시설, 탁
아소, 공부방 등을 늘렸다. 달동네의 재개발 방식을 일반 아파트 건설
에서 임대아파트 건축 방식으로 바꿨다. 42㎞에 이르는 내부순환 도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며 보상비를 줄이기위해 정릉천, 성북천 위 고
가도로 아이디어를 냈다.남산 제모습 찾기 계획을 수립했다. 2기 지하
철 건설을 시작하고 공사비 25%의 국고보조를 따냈다. 노점상 문제와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에서 노상매점을 설치해 임대했다. 시 발주 모
든 공사에 경쟁입찰제를 도입하고 계약서를 공개했다.

◆ 사건사고
6공 최대 비리사건인 수서사건 시비에 휘말렸다. "특혜압력에 반대
해 경질됐다"고 주장하나, 당시 일부 서울시 공무원들은 '시장이 가부
를 명확히 해주지 않아 한보에 빌미를 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시
공무원 인사 때 호남 출신을 우대했다, 안했다 하는 논란이 남아 있다.

◆ 본인의 아쉬움
서울시 교통환경 개선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시행하려다 경
질돼 이루지 못했다. 서울시 교통문제의 장기숙제인 버스 노선 전면
개편계획도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줘 연구를 시작했는데 마무리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