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양선 할머니의 집은 노량진시장 근처의 방3개짜리 33평형 전세아
파트 . 25년 전 충남 서산에서 올라와 이사만 20번쯤 다니다 이 집에서
는 2년째 살고 있다.
거실엔 초등학교에 보낼 한자책과 문제집이 가득 쌓여 있을 뿐 소
파나 탁자는 물론 방석조차 없었다. 벽에는 89년 받은 '자랑스런 서울
시민' 상패와 당시 사진 등이 붙어있다. 그 옆에는 우수시민 표창으로
받은 벽시계가 걸려있다.
안방에 있는 15년째 쓰고 있는 장롱에는 얇은 홑이불 몇 장만 있다.
한겨울 외에는 맨바닥에서 잠을 자기 때문이다. 작은방은 젓갈 담는 검
은 비닐봉지를 두는 창고. 가장 번듯한 것은 2년전 선물받은 TV와 냉장
고. 20년 넘게 써서 문짝이 흔들리는 냉장고를 보고, 모출판사 사장이
'할머니 덕택에 책을 많이 팔았다'며 준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 속에는
반찬 몇 가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장사를 하지 않는 일요일은 빨래하는 날이다. 손빨래를 해야 옷이
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세탁기 없이 베란다에서 햇살을 받으며 쪼그
리고 앉아 빨래를 한다. 그 물로 걸레를 다시 빨고, 걸레를 헹궈낸 물
은 베란다 청소와 시장에서 신는 노란 장화를 씻는 데 쓴다. 기자가 찾
아간 일요일에도 유씨는 빨래를 한 뒤 양말을 꿰매고 있었다. 전날 시
장에서 봤던, 뒤꿈치에 구멍이 난 양말이었다. "새 양말을 신으면 구정
물이 튈까 걱정하느라 장사를 할 수가 없어….".
3년째 쓰는 칫솔은 닳고닳아 칫솔모가 정상길이의 3분의 1쯤 남아
있다. '몽당칫솔'이란 말이 얼핏 떠올라 그렇게 쓰는 까닭을 묻자 유씨
는 "화장실 불을 켜지 않은 채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불에 양치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닳은 줄 몰랐다"고 받아넘겼다.
"아껴 쓴 덕에 재산을 모았고, 그래서 남을 도울 수 있지. 늘 절약
하면 아이엠에프든 어른엠에프든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 낡은
몸뻬바지를 입고서 거실바닥에 기대앉은 유씨는 주름진 얼굴 가득히 웃
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