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2장 날은 다하고 ##.
"약함 또는 힘 너 거기 있구나. 힘이어라/ 너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모른다/ 너는 아무데나 들어가고 모든 것에 대답한다/ 네가
시체일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결코 너를 죽일 수 없으리….".
인철은 그게 그가 한때 미쳐 지냈다는 랭보의 구절임을 알아차렸다.
술기운과 함께 이상한 흥취가 일어 역시 나직한 읊조림으로 받았다.
"틀림없이 방탕은 어리석다. 악덕은 어리석다/ 썩은 부분은 멀리 던
져버려야 하리라/ 그러나 시계가 마침내 순수한 고통의 시간만을 울리
게 되는 법은 없으리.".
그러자 한형이 취한 사람답지 않게 깊숙한 눈으로 인철을 바라보다
가 무슨 예언처럼 말했다.
"이형도 '체형을 받으면서 노래하는 족속'이지…. 이것이 우리에게
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일지는 모르나 이형은 반드시 문학으로
돌아올 것이오.".
그리고 인철이 그의 말뜻에서 어떤 불길함을 찾아내기도 전에 한숨
과 함께 광석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떠날 수 있는 너희들이 오히려 부럽구나.사람의 아들이여, 이제 우
리는 더 머물 곳도 떠날 곳도 없더라….".
한형이 감상적이 되면서 그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광석과 인철에게도
옮아붙었다. 광석이 어울리지 않게 축쳐진 목소리로 한형의 시를 받았
다.
"그래도 이제 날은 다하였고 우리는 떠나지 않으면 안되리라….".
그 다음은 그야말로 이취였다. 정말로 그곳 특주가 막걸리에 도라지
위스키를 섞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정 도수가 막걸리의 배를 넘
어 그들이 우울한 작별의 의식을 마치고 술집을 나섰을 때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취해 있었다.
인철은 어디가 어딘지 모를 길을 걷고 차를 갈아탔다. 하지만 그래
도 아직 젊은 덕분인지 저녁 아홉 시 무렵에는 성남의 집 앞에 이르렀
다. 무슨 일인가로 마침 대문께에 나와 있던 형수가 벽을 짚고서도 비
틀거리는 인철을 보고 놀라 형을 불러냈다. 그런데 그 사이 어떤 감정
의 굴곡을 가진 것일까, 인철은 형에게 부축되어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기세좋게 선언했다.
"형님, 저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쨌든 시험은 합격해
놓고 볼 겁니다. 그들이 정히 저를 판사나 검사로 임용해주지 않으면
평생정부 상대로 행정소송이나 벌이며 보내죠, 뭐. 그것도 해볼 만한
일 같지 않습니까?".
그러자 못마땅하게 굳어 있던 형의 얼굴에 갑자기 애처러워하는 빛
이 어렸다. 부축하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인철을 꽉 껴안으며 한숨처
럼 받았다.
"그래, 할 수만 있다면 해봐라. 나는 언제나 저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스스로를 진창에 내굴렸지만, 너는 달라야겠지. 너를 한층
높이 끌어올려 저들에게 맞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다. 나도 힘껏
도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