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과 진경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문벌과 지역 이념을 뛰어넘을 줄 아는 정신적 깊이라면 진경을 포착
할 혜안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진경을 볼 줄 아는 경지라면 굳이 소인
적 파당 이익에 사로잡힐 리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 조선조 5백년의 르네상스로 일컬어
지는 18세기 영-정조 시대. TV연속극에서는 '대왕의 시대'로 일컬어지
는 이 시대를 각각 '탕평'과 '진경'이란 상이한 사안으로 파헤친 저작
이 잇따라 나왔다. 가톨릭대 박광용(한국근대사) 교수가 쓴 '영조와 정
조의 나라'(푸른역사), 미술사학자 최완수(최완수·간송미술관 연구실
장)씨 등 10명의 학자들이 공저로 쓴 '진경시대'(돌베개)이다.

'영조와 정조의 나라' 저자 박씨는 서울대에서 '조선 후기 탕평 연
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분야만을 끈질기게 연구, '탕평박사'로까지
불리는 인물. 조선사회의 고질로 일컬어지던 지역주의와 문벌주의를 타
파, 2백년전 이 땅에서 '탕평'이란 이름으로 펼쳐졌던 정치개혁의 새바
람을 주인공 영조와 정조, 실력자들을 중심으로 흥미있게 추적하고 있
다. 당시는 부녀자들 사이에도 탕평채와 오미자차, 색동주머니가 유행
했을 정도로 탕평이 시대정신이 됐던 시대였다.

"지금 당파 사이에서 서로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없어졌다. 다만 시
기심이 문제일 뿐이다.".

당시 남인 계열 이론가였던 정범조가 전하는 탕평시대의 분위기이다.

"서로 역적으로 몰아야만 분이 풀리고, 색목이 나누어지면 가까운
친척이라도 서로 상대하지 않던" 분위기와는 상전벽해의 변화다. 영-정
조의 탕평책은 ▲각 당파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논쟁의 종식 ▲관
직 배분의 균형유지 ▲정치원칙의 혁신 ▲군주권 강화였다고 박씨는 지
적한다.

지금의 정치지도자도 그렇지만 탕평을 추진하는 입장의 정조에게도
'인사는 만사'였다. 그의 통치술은 독특해서 학식과 인망을 갖춘 핵심
인물의 경우 일단 8년간 정치와 인연을 끊어야 할 정도의 시련을 준 후,
다음 8년간은 절대적으로 신임-등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지켰다. 박씨는
"정조 별세후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2백년 전의 탕평정치는 이상
적 한국사회의 상징캐릭터로 삼을 만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
순히 각 당파 사람을 섞어쓴다는 인사문제 차원을 넘어 지역대립 해소
를 위한 지역탕평책,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이데올로기 탕평책이라는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완수씨 등의 '진경시대'는 바로 이 탕평시대가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였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정치적으로는 탕평이 전개되는 한편
문화적으로는 조선 고유색이 한껏 발휘되면서 '진경'을 드러내는 시기,
그래서 민족적자존심과 예술적 성숙이 정점에 달한 시기라는 것이다.두
책은 출발점은 다르지만 정치적 성숙이 예술적 완성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역사 현실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필
진은 최씨를 비롯, 정옥자(서울대) 유봉학(한신대) 지두환(국민대) 정
병삼(숙명여대) 이세영(한신대) 김기홍(간송미술관) 오주석(〃) 강관식
(한성대) 방병선(동국대)씨 등. 최씨는 영-정조 진경시대의 대두가 '외
래문화의 충격을 적당하게 수용하여 노쇠한 자기문화를 독특한 모습으
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보존책 때문에 가능했
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 역시 외래문화의 물밀듯한 공세에 허덕
이는 현단계 한국 문화상황에 시사하는 바가적지 않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는 '탕평'이란 이름으로든, '진경'이란 이름으
로든 현대인들에겐 주목의 대상이다.

(*김태익기자·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