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인이 본 제주도' 7월 출간… 17세기 이후 제주모습 다뤄 ##.

아름다운 유채꽃과 화산 섬의 이국적 풍취가 정겨운 제주도. 하지만
17세기 이곳을 발견한 서양인들에게 제주도는 미지의 무서운 섬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뱃사람들 사이에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낯설은 섬
을 지칭할 때 쓰는 '도적섬'(De Ladrones)으로 시작한다.

제주도는 이후에도 늘 서양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1653년 이
곳에 표류했다가 14년간 억류돼 있다 탈출한 네렐란드인 선원 하멜(?∼
1692)의 표류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번 잡혀가면 일생을 붙잡혀 있
어야할 지도 모르는 '공포의 신천지'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1901
년 신축교난 때는 수십명의 기독교도들이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96년 10월 '서양인이 본 조선'을 펴냈던 고서적상 호산방의 박
대헌 대표(45)는 오는 7월 한국 근대사에 서양인의 눈에 비친 제주도에
관한 기록과 당시 풍물들을 담은 그림·사진 등을 모아 '제주 서양 교
류사'를 펴낼 예정이다. 이 책은 상·하 양권을 합친 책가격이 무려 1
백50만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비싼 책'으로 기록됐던 '서양인이 본 조
선'의 후속 시리즈. 박대표는 "처음 제주도가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17세기부터 1949년까지 계속된 제주와 서양의 접촉사를 입체적으로 보
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17세기 이탈리아 지도 '풍마도' 표시.

이 책에 따르면 제주도가 서양 문헌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1653년.

이탈리아인 블라외가 만든 중국 지도에 '도적섬'으로 표기돼 있다고 한
다. 하지만 이 도적섬이라는 이름은 서양인들이 제주도를 잘 몰랐던 시
절에 부른 이름이었을 뿐 17세기에는 '말이 풍부한 섬'을 의미하는 '풍
마(Fungma)도'나 이 섬을 처음 발견한 네델란드 상선 이름을 딴 '퀘파
트(Quelpart)도'로 주로 불렸다고 한다.

풍마도라는 이름은 중국 원대부터 목마장이 있었던 제주도의 중국식
명칭. 서양인들이 중국을 통해 제주도를 알게 되면서 붙인 이름으로 추
정된다.

퀘파트도는 네델란드의 상선 퀘파트호가 1642년 동북아를 항해하다
제주도를 발견한 뒤 붙인 이름이다.

1655년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 마르티니오(1571∼1638)가 만든 '중국
지도첩'은 제주도의 이름을 풍마도로 기재한 첫 세계 지도였다. 이 지
도에는 또한 조선팔도를 '함경(Hienking), 평안(Pinggan), 경기(Kingki),
강원(Kianguen)… ' 등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도는 이때 이후부터 2백여년 이상 서양인에게는 닫힌 섬
이었다. 조선이 쇄국 정책을 취하면서 이곳도 자연히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됐던 것이다.

19세기 초반 구미 열강의 개방 요구가 거세지면서 제주도는 다시 서
양인들의 발길을 맞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출신의 선교사로 1832년 충
청도 서해안의 고대도에 상륙한 귀츨라프(1803∼1851)는 그해 8월경 제
주도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쓴 항해기를 통해 제주도를 국제적
인 무역 도시로 개발하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구상을 하기도 했다.

● 한라산 첫 등정 외국인은 독일 기자.

그가 쓴 '조선 서해안 항해기'의 8월 17일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
다.

"퀘파트도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개발이 잘됐고 교통이 편리하여
무역관을 짓는다면 일본·조선·만주·타타르 그리고 중국과 교역하기
가 아주 쉬워질 것이다. … 이 중요한 지점에 선교관을 세운다면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조선 조정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지 않을까?".

1845년에는 영국 해군 장교이자 측량 전문가인 벨처(E. Belcher·
1799∼1877)가 홍콩 등을 거쳐 제주도와 거문도 일대를 자세히 탐사한
뒤 '사마랑호 탐사 항해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1845년 6월 제주도 동
쪽 우도에 도착한 벨처는 당시 이양선 출현 등으로 동요하고 있는 민심
을 달래기 위해 조선 조정이 파견한 문정관이었던 제주목 정의현현감
임수룡, 역관 이인화와 접촉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책에 당시 이조선
관리들의 초상화와 스케치 그림, 접촉 기록을 자세히 담았다.

그는 이때 제주도를 정밀 탐사한 기록도 남겼는데 당시 지도에 '한
라산은 오클랜드산(Mt. Auckland)으로 높이가 6천5백44피트(1995m)'라
고 돼있어 현대 측정치인 해발 '1950m'에 거의 가까운 수준이라고 한다.

문호가 개방된 19세기 후반에 제주도는 본격적으로 서양인을 맞았다.

1901년 신축교난 수습차 조선 황실 고문 자격으로 방문한 미국 외교관
샌즈(1875∼?)의 눈에는 해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고
록에서 "남성들이 열등하고 여성들이 실질적인 가장으로 모든 섬 생활
을 지배한다"고 썼다.

해녀에 대해서는 "여러 시간 수영할 수도 있고 떠 있을 수도 있으며
오리처럼 쉽게 잠수할 수 있고 바다새처럼 오랫동안 숨을 안 쉬고 물
속에서 쉽게 이러저리 움직이거나 일할 수 있다"고 했다.

1901년 취재차 한국을 들른 독일 쾰른신문사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
(Siegfried Genthe)는 최초로 한라산을 등정한 서양인. 그는 제주도민
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주일 동안 한라산 등정을 강행했다고 그의 유고
인 '조선 견문기'에 기록했다.

제주도를 사랑한 외국인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1913년 미국 남장
로회 선교사의 남편과 함께 내한해 전남 순천에서 생활했던 크레인 부
인(F.H. Crane)은 1931년 '조선의 꽃과 민담'을 간행했다. 부인은 이
책에서 유채꽃 등 제주도의 각종 꽃을 수채화로 그려 놓았고 구전되던
민담도 수록했다. 스웨덴의 동물학자였던 베리만(S. Bergman)은 1935년
제주도를 방문한 뒤 해녀 사진 등을 남기기도 했다. (*최유식주간부기
자·finder@chosun.com*).
------------------------------------------
'제주 서양교류사' 저자 박대헌 호산방 대표
"국내외 옛기록 대중화할 계획"
------------------------------------------
제주 서양 교류사를 준비하고 있는 박대헌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비
싼 책의 저자이다. 96년 10월 펴낸 '서양인이 본 조선'의 상·하권이
무려 1백50만원. 그러나 이런 비싼 가격임에도 지난 1년 반 동안 국회
도서관, 독일국립도서관 등 50여개 국내외 도서관·연구기관 등에서 적
잖은 책을 사갔다고 한다.

97년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이 책을 만든 수고를 인정받기
도 했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국사학계에 기여할 만한 소중한 자
료를 수록했음에도 국내 역사학계가 이 책에 대해 촌평도 하지 않고 있
다는 점이다.

고서적상으로서는 드물게 한국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책으로 펴내고
있는 박 대표는 "앞으로 '서양인이 본 무악재' '서양인이 본 강화도'
(이상가제) 등을 계속 펴내 국내외에 사장되기 쉬운 기록들을 계속 대
중화하는 일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