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양 넘나드는 '광화문의 문화 비평가' 스콧 버거슨 ##.
"비를 피해야겠어요! 종각역 지하도로 자리를 옮깁니다. 6시 반부턴
교보문고 앞 지하도에 있겠어요.".
지난 4월 24일 스콧 버거슨(31)이 다급한 목소리로, 기자의 호출기
음성사서함에 남긴 메시지다. 자리를 옮겨 자신의 잡지를 팔겠다는 말
이다. 그는 한 자리에 편안히 앉아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아니다.바
람불면 부는대로 떠돈다. 그간 인생도 그러했다. 미국 출생이지만 루마
니아, 베를린, 영국, 일본, 한국 등지로 정처없이 떠돌았다.1년후면 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그도 모른다. 히피 출신의 아버지 영향을 받
아서일까.
그는 '광화문의 문화 비평가'이다. 96년 여름 한국을 처음 찾은 그
는 한국 문화계 인사들의 인터뷰와 인물론을 담은 '버그(Bug)'란 영문
잡지를 만들었다. 그 후 '버그' 2집 일본 편을 오사카에서 내더니, 이
번엔 서울로 돌아와 한·일 인물 18명을 담은 3집을 내놓았다.
만난 사람들도 다양하다. 무당 이상순, 뽕짝 가수 이박사, 여자 프
로레슬러 아자 콩, 영화감독 이장호, 설치 예술가 소네 유타카…. 그는
인터뷰는 물론 자료 수집과 글 쓰기, 촬영, 편집을 혼자 해냈다. 게다
가 이렇게 만든 책을 직접 길거리를 돌며 팔고 다닌다. 힌두교 신자인
아버지, 영문학과 철학 전공, 비평가 활동…. 그의 과거사를 모아봐도,
아시아의 낯선 땅을 돌며 잡지를 펴는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
다.
이날 오후, 그는 가게에서 빌린 맥주 박스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팔
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문화에 관해 제가 직접 만든 잡지입니다. 4천
원". 어설픈 한글을 굵은 매직펜으로 쓴 널빤지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
잡는다. 이틀전 햇살 아래서 본 그에게서 자유분방함이 넘쳐흘렀다면,
이날은 날씨 때문인지 꽤 처량해 보였다.
"'버그'가 뭐냐?"고 한 대학생이 묻자 "바로 나"라고 답한다. 그리
고는 도청기, 컴퓨터 바이러스, 벌레 등 여러 뜻을 설명해 준다. 한 중
년신사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어떻게 한국 문화를 익혔냐"고 하자 "눈
을 뜨고, 귀를 열어놓으면 된다"고 짧게 답한다. 한 미국인이 다가와선
"하필 기분 나쁘게 책 제목을 '벌레'로 할 게 뭐냐"고 시비를 걸지만,
그는 몇 마디 하다간 대꾸를 하지 않고 씩 웃고 만다.
그는 매일 오후 3시면 길거리로 나선다. 인사동, 이화여대 앞, 교보
빌딩 부근이 주무대. 준비물은 잡지 30∼40권 정도와, 널빤지 팻말, 선
글라스 정도다. 하루 25∼30권씩은 팔려, 벌써 2백권 좀 못 미치게 팔
았다. 4백만원 들여 2천권을 인쇄, 한 권에 4천원씩 팔고 있으니 본전
이 되려면 1천권은 팔아야 한다. 한데 그는 돈 버는 데엔 별 관심이 없
다. 영어를 못한다고 하면, 팔려던 책을 도로 빼앗곤 한다. "많이 팔고
야 싶지요. 하지만 안 읽을 사람에게 팔 생각은 없습니다.".
도대체 그는 무슨 내용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그의 잡지는 단
순한 인터뷰 모음집은 아니다. 방랑자인 미국인 눈에 비친 한국과 일본
의 문화가 감칠 맛 나게 녹아 들어 있다. 그를 문화 비평가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호출기는 남자에겐 시계, 여자에겐 립스틱같은 것이다.호
출기 없인 밖에 나갈 수 없다…". 국내 호출기 음성사서함 안내 녹음을
한 이재경씨를 '호출기 아가씨'로 소개한 인터뷰에서 그가 쓴 말이다.
어렵사리 만난 무당 이상순의 인터뷰에도 그의 한국 전통 문화에 대
한 생각이 묻어난다. "나는 매사를 하루, 한달, 1년 단위로 보지만 무
당은 수십년, 백년, 천년 단위로 본다. 그들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따
지자는 게 아니다…". 그는 벌써 제수굿과 별신굿이 무슨 뜻인지도 꿰
뚫고 있다.
그의 잡지엔 내용이나 형식이나 틀이 없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동시
에 인터뷰해 엮은 이번 3집은 '발행인과의 뻔뻔스런 인터뷰'로 시작된
다. BUG란 잡지 이름을 내세워 스콧 버거슨(JSB)이 자기 자신에게 묻고
대답한 내용이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말해주세요"(BUG) "지겨워라. 왜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질문만 하는지…"(JSB) "그래도 알고 싶은데요"(BUG) "한
국은 굴 같아서 겉보기엔 딱딱하지만, 한번 열어보면 색다른 맛이 느껴
져요. 일본은 굉장히 예쁜 포장지로 싼 선물 같아요. 속은 알 수 없거
든요"(JSB). 장난기가 묻어나지만 그가 하고픈 말이 숨어있는 게 사실
이다.
표현도 다소 파격적이다. 그는 한국인 뽕짝 가수 인터뷰 서두에서
"이박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사람을 한 번에 먹어치울 정도로 뛰
어나다"고 표현했다. 일본의 여자 프로레슬러 아자 콩의 인터뷰에선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10가지'를 들었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강하고 힘센 여성이다. 그녀는 노벨상 수상을 꿈꾼다. 사무실에서 일하
는 여성이 아니라 차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언뜻 봐선 제멋대로 만든 책 같지만,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인
터뷰 대상자는 영화 미술 작가 전통문화 관계자 등으로 나누고, 성별도
가급적 반씩 나눴다. "궁금해 하는 건 제 쪽인데, 때론 제가 인터뷰하
는 사람들이 되레 저를 궁금해하며 이것 저것 묻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사적인 질문을 자주 던져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단다. 혼자인 게 좋다고 하면서도, 남
들이 잘 대해 주는 건 좋은가 보다. 그는 늘 혼자다. 혼자 길거리를 거
닐고, 혼자 먹으러 다닌다. 그래서 잡지도 혼자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는 이름은 물론, 마스코트까지 '벌레'인 자신의 잡지를 가리키며
"나는 한국 사회에서 벌레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진
않는다.오히려 혼자임을 즐긴다.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게 얼
마나 매력적인지 모르죠? 무얼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유롭게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한살도 채 안돼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히피인 아버지 손에서 컸다. 어릴 적 힌두교
신자인 아버지를 따라 인도를 3개월 다닌 게 그의 첫 해외 나들이였다.
"동양적 분위기가 왠지 더 와닿는 것 같은 게 그 때 영향때문인지도
몰라요.".
글 쓰기를 워낙 좋아해 고등학교 교내 신문 편집장을 맡았다. 버클
리대학에 가서도 '비잔티움'이란 시 잡지를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 그
의 본격적인 떠돌이 인생이 시작됐다.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이란 이유
만으로 루마니아를 찾아갔고, "미국 아닌 유럽을 느끼고 싶어서"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지냈다.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잡지나 문 등에
글을 쓰는 평론가 일을 했다. 그러다간 다시 영국행. 그 뒤 호주와 일
본 등지를 떠돌다가 96년 한국에 온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녔어요. '날나리'처럼 사람들 만나고,술
마시고, 논쟁을 벌이고…." 길거리 생활을 주로 하다보니 돈 걱정은 별
로 안해도 됐다. 부족하면 그 때마다 영어강사로 일하며 벌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돌며 '거리 잡지'를 만드는 일이 마냥 즐겁다.
심각한 척, 유식한 척 하지 않아도 되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편안하게
쓸수 있어서다. 그는 포장마차나 막걸리 같은 한국의 일상 문화를 주제
로 에세이를 써볼 계획이다. 제목도 이미 정했다. 프랑스 문화비평가
롤랑바르트가 '기호의 제국(The Empire of Signs)'에서 일본 대중 문화
를 소개한 것처럼, 자신은 '한의 제국(The Empire of Sighs)'으로 하겠
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아∼'할 땐 잘 들어야 해요. 좋은 것에 대한 감탄일
때도 있지만, 슬픈 마음을 달래는 탄식이기도 하거든요.".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자신들의 문화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안
타깝다고 한다. 양국간 보이지 않는 앙금을 걷어내고, 서로를 이해하도
록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버그' 3집을 낸 것이라고 한다. "제 책
이 다른 외국인들이 한국과 일본의 밑바닥을 접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그는 이제 떡볶이와 보신탕, 닭갈비 없이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앞 일은 그도 모른다. "저라는 사람
을 제가 알지요. 지금은 한국 예찬론자가 돼 있지만 얼마 후면 또 싫증
난다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릴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