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를 노리는 한광옥 부총재는 DJ를 '믿었다.'후
보 교체론이 불거져 나와도 DJ의 뜻은 변함없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대세는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선 DJ의 마음을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고건 전 총리를 영입키로 했다.

이번 일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권력 세계의 비정함'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는 이들도 있다. 김 대통령과 한 부총재가 그동안 맺어온 남다른 정
치적 관계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한 부총재는 30∼40년 동안 김 대통령과 생사를 같이 해 온 권노갑 전
의원, 한화갑·김옥두 의원과 같은 'DJ 가신'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
에 버금가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가신 출신도 아닌 한 부총재가 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된 것은 전
두환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82년, 한
부총재가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김대중 석방'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는 '김대중'이라는 말의 '가'자도 꺼낼 수 없는 살벌한 세상
이었다. 김 대통령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중이었
다.

그런 시절, 한 부총재의 발언은 핵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여당인 민
정당 의원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한 부총재의 발언 취소와 속기록
삭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 부총재는 끝내 이를 거부했다. 이 소식은
옥중에 있던 김 대통령에게 알려졌고 이때부터 김 대통령은 '한광옥'이
라는 사람을 눈여겨 보게 됐다고 한다.

85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주축이 된 민추협이 발족돼 YS와 DJ가 공
동의 장을 맡으면서 DJ는 한광옥 부총재를 민추협 대변인에 임명했다.한
부총재는 86년 11월 건국대 점거 농성 사건으로 구속된 대학생 석방을
요구는 성명서를 냈다가 구속되는 등 몇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DJ의 민
주화 운동 동지가 됐다.

한 부총재는 주로 김 대통령의 뜻을 수행하는 '막후 밀사' 역할을 했
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95년 5월 민주당 시절의 경기지사 후보 조정 문
제였다.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DJ와, 동교동계의 지원 아래 민주당을
관리하고 있던 이기택 총재는 그 해 6월 실시된 지방선거의 경기지사 후
보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DJ는 이종찬(현 안기부장)씨
를 밀었고, 이 총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
에 나선 장경우씨를 밀었다.

DJ는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에서 승리해야 자신의 정계 복귀 발판
이 구축될 것으로 보고 서울시장 후보로 조순 당시 서울대 교수를 영입
한데 이어, 이종찬씨의 경기지사 후보 만들기에 전력을 다했다. 반면 이
총재는 경기지사만은 자신의 세력으로 해야 한다며 강하게 맞섰다.

이때 DJ와 이 총재 사이를 오가며 막후 밀사 역할을 한 사람이 한 부
총재였다. DJ가 여러 가신들을 놔두고 한 부총재에게 일을 맡긴 것은 한
부총재의 우직스러울 만큼 사심없는 충성심과 협상력을 높이 샀기 때문
이라고 한다. 협상은 결국 결렬됐지만 이 총재는 당시 "한 부총재라면
믿고 얘기할 수 있겠더라"고 평가했다.

한 부총재는 DJ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한사코 하지 않았다. 95년 5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 때도 한 부총재는 당내 경선 출마를 준비하
다 DJ가 조순씨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당시 조세형
홍사덕 이철 의원이 'DJ의 중립'을 요구하며 끝까지 경선에 참여한 것과
는 대조적이었다.

한 부총재는 작년 대선 전에는 DJP 단일화 협상 대표, 대선 후에는
노사정 위원장을 맡으면서 DJ의 뜻을 이뤄냈다. DJ는 한 부총재의 뚝심
과 추진력, 지칠 줄 모르는 협상력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 세계에선 동지애보다 권력 추구가 앞서는 것일까. 한 부
총재에겐 정작 자신의 서울시장 후보 문제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 꿈에도
생각치못할 일이 벌어졌다. DJ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한 부총재가
당초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하게 된 것은 김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김 대통령은 국민회의 '빅3'로 불리는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에게는 당
을 맡기고 이종찬 부총재는 안기부장에 임명하면서 한 부총재는 서울시
장후보로 교통정리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 한 부총재의 인지도가 예상보다 낮
은 것을 알고 4월 중순부터 후보 교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고건 전 총
리영입설도 나왔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켜 그 여세를 몰아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려는 김 대통령은 '동지애'
보다는 자신의 '권력 기반 확대'쪽을 택한 것이다.

한 부총재로선 예상 밖의 사태였다. 자신의 정치 생명과도 직결된 문
제였다. 이에 한 부총재는 4월 19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만나 자신
의 서울시장 출마 뜻을 다시 밝혔다. 하지만 한 부총재에 대한 후보 사
퇴종용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김 대통령은 4월 23일 조세형 대행으로부터 주례 보고를 받으면서 한
부총재를 설득토록 지시했고, 이에 따라 조 대행은 다음날 오전 한 부총
재와 고교 동문인 안동선 부총재에게 한 부총재를 설득해줄 것을 당부했
다. 조 대행은 당일 오후에는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한 부총재
를 직접 만나 김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기도 했다.

한 부총재는 처음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며 "고건 전 총리가 영입
되더라도 반드시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4월 25일 김 대통령의 뜻이 불변인 것을 알고 대세는 끝나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한 부총재는 "김 대통령에게 나의 당선 가능성이 약하다는 정보가 워
낙 강하게 입력돼 있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더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 대통령에게 그런 정보를 입력시킨 세력이 따로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부총재가 서울시장이 됐을 경우 그의 정치적 위상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일부 중진들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부총재 측은
이종찬 안기부장, 조세형 대행 등에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고도 있다.

한 부총재는 "웃어른(김 대통령)을 모시면서 목소리를 낮추다 보니
다소 인지도가 떨어져 외부 강연 등에 주력하고 있는 사이에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DJ를 위해 몸을 낮춰 온 것이 거꾸로 낮은
인지도와 당선 가능성 시비를 낳게 된 현실에 대한 비애감이 어려 있는
듯했다.
(*김낭기 주간부 차장대우·ng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