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2장 날은 다하고 ⑪ ####.
"실은 나도 조금 지쳤어. 좀 쉬고 싶어."
"그럼 휴학?".
"군대에나 갔다 왔으면 해. 어차피 한번은 다녀와야 할 곳이고 그들
도 그런 암시를 했고…."
"그들?".
"경찰 말이야. 처음에는 은근한 강요같이 들렸는데 지금은 나도 기
꺼이 동의하게 되었어. 실은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기분이 못 견디겠
어. 감시란 게 이토록 효과적인 억압의 수단일 줄은 몰랐어.".
인철에게도 군대가 한 대안으로 떠오른것은 그때였다. 맞아, 거기서
한 삼년 파묻혀 있다가 나오면 무언가 할 만한 일이 보일지도 모르지….
"너 신체검사 연기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당장 신체검사를 받는
다해도 입대까지 일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실은 해병대에 지원했어.가장 빨리 입대할 길은 그 방법 밖에 없어
서. 보름 후에 입대해.".
"그랬구나…."
"그런데, 넌 자퇴를 한다구? 정말 아주 떠날거야?".
"그건 어디서 들었어?"
"학과장님께 인사차 들렀더니 그러시더군. 정숙이한테도 들었고…
이유가 뭐야?".
인철은 그제서야 그가 자신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올 수 있었던 까
닭을 알 듯했다. 자신의 마지막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하고 떠난 정숙을
떠올리자 갑자기 말투가 뒤틀어졌다.
"여긴 잘못 끼어든 놀이판이었어. 나 같은 놈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
는… 정숙이 걔가 그건 말해주지 않았어?"
"참,그것두 궁금하네. 니네들은 어떻게 돼? 군대에 갔다가 돌아온다
는 것도 아니고 영영 떠난다는 건데, 걔가 뭐래?".
"뭐라구 할 것도 없어. 우린 벌써 지난 연말에 끝났으니까. 그냥 허
영에 찬 작별의 의식이랄까, 마지막으로, 그것도 우연히 학교에서 부딪쳤
으니까 차 한잔 나눈 것 뿐이야.".
인철이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받았다. 광석이
그런 인철을 한동안 살피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던데. 정숙이 걔 그렇게 심각하고 슬퍼보이는 표정
으로 혼자 있는 거 입학하고 처음 봤어. 너 혹시 너무 네 기분에만 취해
후회할 소리 한 건 아냐?".
광석이 전해준 정숙의 표정이 뒤틀린 인철의 기분에 묘한 진정의 효
과를 나타냈다. 인철은 공연히 찌르르 해오는 가슴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목소리에 어리는 감상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