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북한 핵카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인가. 최근 미국 워싱
턴의 한-미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은밀하지만 심각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최근의 논의는 실제 상황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현재 '돈 문제'
로 고통을 겪고 있는 94년 제네바 핵합의의 어려움을 극대화한 가상 상
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대강 이렇다. 미국 정부가 재원
부족으로 인해 이미 이번달부터 중단된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문제를
끝내 해결치 못하고, 한-미-일 3국도 경수로 분담금 문제에 대한 합의
에 실패, 제네바 합의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 첫 단계다.
이어 북한이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이 미국쪽에 있음을 선언하고, 그
들의 의무 사항인 핵동결약속을 지킬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 2단계다.
이어 미국이 다시 북한 핵 외교에 나서고, 북한이 핵카드로 맞서면서
또 한번 한반도 위기 상황이 조장된다는 것이 시나리오의 마지막 단계
다. 한-미-일 3국의 '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결국 '판도라의 상자'
나 다름없는 북한 핵카드의 뚜껑을 열어주는 것을 골자로 한 시나리오
인 것이다.
이에 맞춰보면 지금 상황은 1단계의 중간쯤에 해당된다. 경수로 건
설이나 중유 문제는 모두 늦어도 오는 여름까지 해결되어야 하지만 한-
미 정부 관계자들은 이와관련, "대책이 없다"는 말만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미국의 대응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 핵
카드 부활이라는 논리의 진원지도 미국쪽이다. 미국은 이같은 논리 전
개에서 "과연 그렇게 됐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이 누구인가"라는 질
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최대 수익자인
한국과, 그 다음쯤에 해당하는 일본이 현재 갈등을 빚고 있는 돈 문제
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우리에게 안보적 불확실성은 부
담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또 현재 미국이 중유 분담금(?)으로 한국
에 요구중인 1천만달러를 조금 넘는 돈 때문에, 갓 출발한 김대중정부
의 대미 관계 전반을 위협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실리론도 등장하고 있
다. 북한 핵문제는 돌고돌아 또 한번 한국 정부의 '외교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