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만남 선우'·'카시네트'의 성공 비결 ##.

서울 종로구 효제동 '㈜좋은만남 선우'의 이웅진(33) 사장에게는
가보처럼 간직하는 서류 묶음이 하나 있다. 휴지가 된 수많은 어음과
은행입금 전표. 다름 아닌 부도 서류철이다.

IMF 위기에도 이 사장은 요즘 미혼 남녀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
벤트 업계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사람으로 통한다. IMF 때문에 주변
사무실이 텅텅 비고 멀쩡한 사람들이 망해 나가는 판에 이 사장은 지
난해보다 5배나 많은 소득세를 내고, 지난 2월에는 직원들의 월급을
10% 올려줬다. 올들어 직원도 13명에서 28명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오는 5월이면 비좁은 사무실을 떠나 이사를 간다. 그런 이 사장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도의 증거'를 늘 옆에 지니고 있는 이유는 뭘
까.

"94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좀 더 빨리 돈을 벌어보겠다며 무리
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1억7천만원의 부도를 내고 말았습니다. 태어
나서 그날처럼 쓰디쓴 세모를 지내기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장은 91년 11월 단돈 1만원의 창업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
다. 학원을 하는 친지를 찾아가 교실 하나와 전화기 한 대를 공짜로
빌리고 1만원으로 중고 책상 2개를 사서 사무실을 차렸다. 하루 종일
전화통에 달라붙어 남녀를 짝지워주는 이 '청춘남녀 교제 사업'은 날
로 번창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됐다. 사업을 키우면
서 겁없이 돈을 끌어 쓰다가 3년 만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직원 36명을 두고 2백평의 사무실에서 그럴 듯 하게 사업을 했
죠. 하지만 실은 속빈 강정이었습니다." 사업이 부도를 향해 달려가
던 같은 해 10월 결혼을 하면서 집 구할 돈이 없어 처가살이를 할 정
도였다. 신혼 여행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장에게는 그 때의 부도가 전화위복이었다. 부도를 당
하고 요즘 유행하는 '구조 조정'을 했다. 수입이 없어 망한게 아니라
지출이 커서 망했기 때문에 사업 규모를 줄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6명의 직원을 단 3명으로 줄이고 2백평 사무실을 나와 6평짜리로
들어갔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40여명의 빚쟁이들에게는 "다시 일어나
서 빚을 갚아드린다"고 수없이 약속했다. 부도를 내고난 뒤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러면 끝이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텼다. 이
사장은 "그때 도망갔다면 시달리지는 않았겠지만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을 괴롭히던 빚은 부도 후 2년 8개월 만에
모두 정리됐다.

● 무차입경영으로 구조 조정.

부도를 낸 뒤 이 사장은 경영 스타일을 바꿨다. 수입 범위에서만
지출하고 절대 차입은 하지 않는 현찰결제 방식을 택했다. 명색이 사
장인데도 절약하려고 자가용도 없이 전철로 출퇴근한다. 이 사장은
"IMF를맞고 보니 빚을 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
다"며 "사업이 급속히 커지지는 않겠지만 다시 망하지도 않을 것"이
라고 말했다. "남들은 빚 막으러 돌아다니는 사이 나는 앉아서 사업
구상을 할 수 있는 것도 빚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핍만으로 사업이 잘 될 수는 없는 법. 이 사장은 철저한
고객 서비스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추석 때 실시한 귀성길 카풀 미팅과 올 초에 가진 헌혈
미팅 때의 일. 이 사장은 두 행사 모두 고객들에게 큰 재미를 주지
못했다고 판단, 지난 3월과 4월 참가자들을 도봉산과 타워호텔로 다
시 초청해 미팅 행사를 열었다. 참가비는 무료. 그는 "당장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그런 행사를 할 수 있겠느냐"며 "행사 참가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이익을본다"고 말했다.결
혼 성공률도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 그는 "선우를 통해 결혼한 464쌍
중 단 1쌍만이 이혼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요즘 사업가로서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부도
를 내고 가슴이 아팠지만 직원을 내보내는 일은 더 못할 일이더라는
것.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계속 주려면 역시 사업이 잘돼야 한다는 생
각이다. 이 사장은 "남들은 봉급이 깎이는 판에 우리 직원들은 오히
려 월급이 올라서 그런지 일도 열심히 한다"고 자랑했다.

● `키씨네트', 교내 컴퓨터과외 개척 성공.

이웅진 사장이 남녀 교제라는 전통적인 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면,
'카시네트'의 고종욱(28) 사장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교내 컴퓨터
과외'라는 새 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사업가.

고 사장은 출신부터가 특이하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유학파이다. 94년 졸업
후에는 미국 5대 증권사의 하나인 베어스턴사에 입사, 외환딜러로 일
했다. 외환딜러로 잘나가던 그가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97년 3월. 동
양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을 느껴오다 차라리 내 사업을 하
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죠. 시골 동네의 음식점에서 어린 아이를
하나 봤는데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놀라서 마구 울
더라구요. 아이 엄마가 재빨리 뛰어와서는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더군
요. 아이가 동양인을 처음 봐서 그런다면서….".

97년 1월 베어스턴사를 퇴사한 뒤 서울로 돌아온 고 사장은 우연
한 기회에 부도난 교내 컴퓨터과외 업체를 알게 됐고 "이런 사업이라
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교내 컴퓨
터 과외란, 학원업체가 학교에 컴퓨터교육을 위한 시설을 설치해주고
교내에서 과외를 해주는 신종 교육사업.

그러나 창업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차리고 6월까지
3개월간 어느 학교와도 계약을 하지 못했다. 외환 딜러로 번 돈도 조
금씩 까먹어갔다.

고 사장은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만이 성공의 길이라는 결론을 내
렸다.

"컴퓨터 과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입니다. 컴퓨터를
펜티엄급으로 설치해 주고 교육용 CD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 주는 등
사후관리를 계속하지 않으면 수강생이 줄어들어 망하고 말죠.".

고 사장은 이같은 전략으로 학교들과 접촉, 지난해 10월 오류남
초등학교와 첫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같은해 8월 5개 업체가 참가
한 가운데 시연회를 열어 가장 우수한 업체로 선정된 데 따른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계속됐다. 오류남 초등학교에 40대의 컴퓨터를 설
치하고 나니 돈이 바닥났다. 그러던 중 길이 열렸다. 고 사장의 사업
에 전망이 있다고 판단한 대우통신으로부터 12개월 분납이라는 파격
적인 조건으로 컴퓨터를 공급받은 것.

고 사장은 "처음에는 못믿겠다던 회사측이 우리의 사업 계획을 면
밀히 분석하고는 OK를 해줬다"고 말했다.교육의 질을 높여 수강생 감
소를 막는다면, 대우측에도 안정적인 컴퓨터 수요가 보장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현금 장사라는 학원 사업의 특성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고
사장은 "나와 상담을 한 대우통신 간부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였는
데 그분에게 교육 내용을 설명했더니 '나도 그런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며 컴퓨터 공급을 약속해 줬다"고 말했다.

오류남 초등학교에서의 사업 성공은 다른 학교로 이어졌다. 수업
내용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며 계약 학교가 급속히 늘어 이제는 11개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과외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수업료는 3만
원으로 사설 학원의 절반도 안되기 때문에 IMF로 지출을 줄여야 하는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얻었다. 저렴한 수강료와 수업의 질에 승부
를 건 것이 주머니가 가벼워진 학부모들에게 먹혀들었다.

고 사장은 "아무리 가격이 싸도 기자재가 낡거나 고장 수리가 제
대로 되지 않으면 고객이 실망하게 된다"며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교육 시작 후에도 세심하게 사후 관리를 해주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고 사장은 한 학교당 최소한 4백명이 모여야 사업을 한다. 그 이
하로는 수지가 맞지않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당 적어도 월 1천2백만
원이 들어오고 있다"며 "3개 학교는 이미 투자비를 건졌다"고 말했
다. 고 사장은 "나머지 학교도 초기 투자 후 5∼6개월이면 손익 분기
점을 지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주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