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학살자', '킬링필드의 연출자' 폴 포트가 마침내 죽었다.
시신은 연금돼 있던 캄보디아 북부 국경지대 정글 속 오두막에 누워 있었고, 16일 일부
서방기자에게 공개됐다. 학살만행에도 불구 73세 장수를 누린 그의 시신에 외상은 없었으며
곁에는 부인과 딸이 오열하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 잠자리에 모기장을 치던 중 남편이
사망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크메르 루주 관계자들은 전통의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절차를 협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런 폴 포트의 죽음은 캄보디아의 20여년 피투성이 내전의 종말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크메르 루주의 정신적 버팀목이 쓰러짐으로써 18년째 버텨온 '사회주의 혁명
게릴라'의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 목'이 이끌고 있는 크메르 루주는 90년대 들어 안그래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캄보디아 정부군에 밀리면서 이탈자가 속출했고, 학살집단은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포위로 사면초가에 처해 있었다.

크메르 루주는 작년 7월 라나리드 전 제1총리가 훈센 제2총리와 권력투쟁에서 밀려 축출됐을 때 라나리드측에 가담함으로써 몰락을 재촉하기도 했다. 훈센의 공세로 궁지에 몰리자
태국으로 탈출허용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런 상태에서 '옛 사령관' 폴 포트는 최후의
카드였다. 그의 목숨을 거는 대신 크메르 루주는 '생존과 탈출'을 보장받는 '거래'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작년 7월 폴 포트의 공개재판 광경을 서방언론에 공개한 것도 그런 전략에
입각해 있었다는 지적이다.

2주전 미국의 폴 포트 체포령이 내려지자 크메르 루주측은 위기를 벗어나고 식량, 의료품 등 국제지원을 받는 대가로 폴 포트를 넘겨주겠다는 뜻을 서방측에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 코앞에 다가온 크메르 루주의 해체로 캄보디아가 오는 7월 총선을 통해 평화정착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현재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훈센 제2총리측이 얼마나
공정하게 총선을 치를런지가 마지막 관문으로 남아 있기는 하다. 훈센은 지난달 말 태국에
망명해 있던 라나리드의 일시 귀국을 허용, 화해 제스처를 보인 바 있어, 폴 포트의 죽음은
총선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폴 포트의 죽음은 아쉬움도 함께 남겼다. '혁명의 방해꾼'이라며 처형한 2백만
캄보디아 주민에 대한 폴 포트 자신의 고해와 속죄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킬링필드'의
진상도 망각 속에 묻혀버릴지 모른다. 폴 포트가 죽음에 이른 과정과 사인에 대한 의혹이
완전 해소될지도 의문이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