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의 뿌리를 찾아서'
한계옥지음
조영욱옮김
자유포럼·9천5백원.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침략과 식민지배에 관련된 일본 정치가-지식
인들의 고질적인 망언 사례들을 집요하게 추적, 그 계보와 배경 등을 일
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재일동포 학자에 의해 출간됐다. 오사카에서 출
생, 교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를 거쳐 82년부터 아시아동향
연구회 대표로 있는 한계옥(70)씨가 내놓은 '망언의 뿌리를 찾아서'(자
유포럼, 조양욱 번역)이다. 일본인들의 망언 한마디에 온나라가 들끓듯
하면서도, 이 망언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언제부터, 어떤 사람들에 의
해 행해져 왔는지 차분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드문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평가된다.

흔히 일본 정치가들 망언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것이 1953년 10월
한-일 회담 일본측 구보다 간이치로 수석대표가 했다는 이른바 '구보다
망언'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36년 동안 철도를 부설하고 항만을 건설했다.한
국이 36년의 피해보상을 요구한다면 한국에 남겨두고 온 일본의 재산
반환을 요구하겠다.".

한계옥씨의 '망언의…'는 그러나 여기서 훨씬 더 거슬러올라가 19
세기 중엽의 에도시대 말기와 메이지 시대 초기의 정한론에서 망언의
뿌리를 찾는다. 사토 노부히로, 요시다 쇼인 등 근대 일본의 '사부'에
게서 싹튼 망언은 다시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
미치등 이른바 '메이지유신 3걸'의 정한론과 연결되면서 한 차례 절정
에 오른다. 유길준과 김옥균의 유학을 알선하기도 해서 일부 한국인들
에게는 개화의 은인처럼비쳐지기도 하는 후쿠자와 유키치조차 "본시 이
나라(조선)는 어떠냐 하면 아시아의 작은 야만국으로 그 문명의 모습은
우리 일본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였
다. 청일전쟁기의 저명한 언론인 야마지 아이잔은 "한국인이 스스로 떨
치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고목에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
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의 망언은 2차대전에서의 패전 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냉전적 세계질서의 전개, 급속한 경제부흥 등은 일
본의 과거를 흐지부지 은폐해줬고, 망언의 온상을 제공했다. "아무튼
아시아에서야 일본을 형님으로 여기는 것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도
니까 말이지. 우리가 장남이고 한국이 막내와 같으니까 기울어가는 집
(한국)을 잘 받쳐주지 않으면안된다구"(1965년 아시모토 도미사부로
관방장관). "1백50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가 홍콩의 번영을 낳았다. 일
본의 한반도 지배는 너무 짧았다"(1997년 신진당 니시무라 신고 중의
원)….

그래서 1백년도 더 전에 정한론과 황국사관에서 비롯된 일본의
망언은 지금도 연례 행사 같은 몇 차례씩의 정치인 망언을 거쳐, 최근
엔 민간인들에 의한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망언
이 언제 없어질 것이냐는 것은 2차대전 패전 직후에도 이뤄지지 못했
던 일본인들의 진정한 과거참회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씨는 진단한다.

( 김태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