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때 유물과 함께 발굴…지세로 원형 보존된 듯 ##.
'450년 된 미라가 출현했다?'.
경북 안동시에서 조선 중기 시대 여인의 시신과 의류 40점, 유물
10여점이 원형 그대로 발굴돼 화제가 되고 있다. 시신은 손톱·발톱
은 물론 머리카락과 눈썹, 얼굴 윤곽까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뚜
렷하게 남아 있는 상태. 키가 1백45㎝ 정도인 시신은 탈수만 됐을
뿐, 피부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신에 대해 학계에선 갖가지 설들이 나돌고 있다.
'특수한 시신 방부처리 기술 때문이 아니냐' '우연히 이뤄진 일이
다' '지세와 관련있다'… 등등. 무엇이 진실일까.
이 여인은 조선 선조 때 의료 기관인 전의감에서 벼슬을 지낸 이
명정의 부인 일선 문씨.
문씨의 시신과 옷가지들은 지난 4월 7일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지구 내야산에서 고성 이씨 종손인 이도형(57)씨가 묘를 이장하는 과
정에서 나왔다. 문씨는 치마와 저고리 등 상의 8점, 하의 8점의 옷을
입고 있었다. 부채와 염주알등 부장품 10여점도 함께 들어있었다. 자
손들은 관 속에서 나온 옷가지와 유물을 안동대 박물관에 기증했고,
시신은 이튿날 이장됐다.
이번 '미라 등장'은 여러가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첫번째는 어떻
게 4백여년 된 시신이 원형 그대로 유지돼 있을까 하는 점이다. 두번
째는 문씨의 관과 6㎝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남편 이명정의 시신은 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돼 있느냐는 점이다.
고성 이씨 족보에 따르면 이명정은 갑자년(1504년)생으로, 을축년
(1565년)에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부인 문씨의 사망 연대는 기재돼
있지않으나, 시신 형태로 보아 1560년 전후로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
면 사망 시기 차이는 고작 5년. 그런데 왜 한 사람은 원형으로 보존
돼 있고, 한 사람은 한줌의 흙으로 바뀌었을까.
안동대 학술조사팀은 일단 시신의 원형 보존에 대해 목관 전체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10㎝ 두께의 석회곽에 신비의 열쇠가 있을 것
으로 보고 있다. 석회와 흙으로 만들어진 석회곽이 외부의 습기나 공
기가 관 내로 침투하는 것을 막았을 것이란 얘기다. 또 시신 밑에 얇
게 깔려있는 숯도 시신의 부패를 막는 데 일조했으리란 분석도 나오
고 있다. 조사팀은 그러나 특별한 방부처리 기술에 대해선 부정한다.
조선시대 분묘는 내관, 외관, 석회곽으로 겹겹이 쌓인 형태로 대부분
비슷한 점에 비추어, 이명정의 묘를 부인 문씨의 묘에 합장하는 과정
에서 이명정의 시신에는 습기 등이 침투돼 문씨 시신만 보존됐을 가
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부에선발굴된 부장품 중 주머니 속에 있는 물
질이 특수 방부 처리에 '묘약'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하는 얘기가 나
왔지만근거 없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신의 원형이 보존된 데는 분묘 위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세설도 나온다. 길지에선 사람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흉
지일 경우 시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중
앙박물관 정양모 관장은 "관을 둘러싼 석회곽이 방부 작용을 했을 것
이란 말도 있지만 검증은 안된 상태"라며 "지세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TV를 통해 본 일반인들과는 달리 실제 학계 사람들은 "별 일 아니
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과 같은 발굴은 이따금 있는 일이라는 것
이다.다만 다른 문중의 후손들은 시신이 겉으로 드러나길 꺼리고, 내
부 유물에도 손을 못 대게 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등장한 미라'라는 식으로 부풀려 보는 시각도 못
마땅해 한다. 이번 발굴된 시신은 인체의 내부 장기를 빼내고 봉합,
약물처리한 기존 미라 개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임세권 안
동대박물관장은 "학술 연구에 보탬이 되도록 협조해 준 이씨 후손들
에게 감사한다"면서 "특수한 의학 기술이라고 과장해 말하기보다는
출토된 유물들이 갖는 가치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시신과 함께 발굴된 옷가지와 유물 등 50여점도 학술 연구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흰색, 짙은 갈색의 비단 옷
들은 역사 복식, 출토 복식, 계급 복식 등 복식 문화사에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 출토된 옷들은 시신이 입고 있던 수의 16점과, 시신과 관 사
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보공용 옷 등 40점 정도다. 수의는 치마, 저
고리, 너른바지 외에 버선과 목멱(얼굴 덮개) 등이 원형 그대로 발견
됐다. 평상복은 겨드랑이 부분에 다른 색을 댄 삼회장 저고리 등 상
류층 여성들이 입었던 것으로, 배래선이 직선이라고 한다. 깃은 한쪽
이 다른 한쪽을 거의 덮을 정도로 돼 있는 칼깃이다. 명주 옷에는 이
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문양들도 나타나 있다고 한다.
일단 조선 전기 시대의 복식으로 보고 있는 학술 조사팀은 보존
작업을 마친 뒤,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복문화연구회
를 맡고 있는 조효순 명지대 생활과학부 교수는 "조선시대 특정 계급
의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문양이 허용됐는지 등을 꼼꼼
히 살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4백50여년 만에 나타난 '미라 할머니'는 무한
한 시간 앞에서 초라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같다.
(황성혜 주간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