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가 앞으로 5년간 어떤 노선을 걷게 될 것
인가 흥미깊게 보고 있다. 오랫동안 친여의 길을 걸어왔는데 현 정권
과 관계에 '혁명'을 해서 다시 친여 궤도에 들어설 것인가, 혹은 5년
간 인동초의 세월을 보낼 것인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론지로서의 사명과 야심을 가진
신문이라면 친여도 안될 말이며,권위주의나 전체주의 체제도 아닌 이
상 저항신문의 길도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중
립 노선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의 편에서 보는이른바 '국민 중심노선'을 가져야 한다.
현재 절실한 '국민 중심노선'은 '서울지방' 신문에서 벗어나 세계
화 시대가 요구하는 언론이면서, 동시에 엘리트 중심이 아닌 국민의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된 신문이라면 외채로 국난에 처한 상황에서 연일 북풍이나
안기부장 문제를 대서특필하며 지샐 수는 없다. 무디스나 소로스류의
발언도 세계적 안목에서 걸러 주어야지 그들 한마디 말에 온 나라가
매달려 울고 웃고 들끓게 하는 방식으로 전해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외채상환의 문제나 한국적 체제가 지닌 저효율성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온 국민이 뉴욕, 런던, 파리, 동경과 같은 세계
적 틀과 기준에서 차분히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할 것
이다.
조선일보는 국민의 신문이 아니라 '베르사이유 궁전'에 모여 파티
를 일삼는 사람들을 위한 신문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있다. 걸핏하면
바뀌는 국가 고위직 인사를 부인 이름과 나이, 자녀수 같은 가족상황
에 덕담까지 곁들여 대서특필,봉건시대처럼 '가문의 영광화'한다. 저
명 인사들의 동정이나, 세 과시 모임의 사진보도에는 많은 지면을 할
애하면서 정작 우리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농-어민, 근로자들의 삶 자
체에는 관심이 인색해 보인다.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궁전의 창문'
으로 본 허상일뿐 그들의 삶과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냉
소의 이유이다.
실상 그런 보도정책의 폐해는 크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소외감을
주어 그들의 삶과는 상관없는 신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서 멀어지게
한다. 또한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천직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사
람들에게 직업의식을 약화시키면서 벼슬을 선망하고 동경하게만들 위
험도 크다. 조선일보 자신이 정계와 정부 고위직 인사의 주요 공급원
의 하나였다는 사실도 차제에 반성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