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MBC PD).

영상은 흘러가지만 글자는 남는다. 신문의 방송관련기사를 볼때마다
20세기 TV종사자들의 허물이 고스란히 역사에 기록되는 것 같아서 두렵
고 안타깝다. 영상창조에 쏟는 고뇌의 3분의 1만 기사작성을 위해 쏟는
다면 오늘날 TV종사자의 신문에 대한 불만은 삭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시청자의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인상과 관점이 조선일보에 실린
방송비평과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는 일이 있
다. 그들은 TV를 보지 않고도 신문을 통해 해석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문제는 수준이 아니라 기준이다. 조선일보가 대중문화, 특히 TV를
보는 시각과 안목은 초지일관이다. 대중문화의 미덕이 다양성의 존중임
을 고려할때 이 신문이 견지하고 있는 편협된 시각은 거의 눈물겨울 정
도이다. 그들이 가진 잣대는 적어도 TV종사자가 보기엔 지나치게 윤리
적, 도덕적 완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견 그것은 조선일보가 지닌 '애국적 정열'의 소산이라고 눈감아
줄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신문이 가진 영향력이 엄청난 수의 독자(그들
은 시청자이다), 심지어 다른 신문들에까지 미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진실한 우려와 애정에서라기보단 우월적 힘과 권위의 과
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때로 의심스럽다. 차제에 조선일보에 제안
한다. TV를 보는 시각을 지금처럼 일방적, 획일적으로 닫아두기보다는
쌍방향, 다양한 채널로 열어둘 것을 권한다. 즉 TV종사자의 입장과 시
각, 기획의도, 가치관 등을 밝힐 수 있는 지면을 과감하게 할애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신문기자와 TV PD, 그리고 시청자 대표가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이다.

모든 문제의 출발은 이중성에 있다. 방송이 공영성을 떠들어대도 결
국은 상업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듯 우국열정에 사로잡힌 신문도 스
스로는 그러한 이중성의 덫에 포획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성적보다
는 인격이 소중하다고 가르치면서도 기말고사 성적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이는 교사나 시청률보다는 작품성 아니 도덕성이 우선이라고 사설에
서까지 주장하면서 매주 시청률 10등까지를 친절하게 공개하는 신문의
태도는 매우 닮아 있다.

신문과 방송이 견제와 균형의 논리를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러나 종종 그 둘의 다툼은 실속을 위해 명분을 둘러대는 일이 잦다. 그
것은 잘못이다. 이중성이 결국은 문제지만 실상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기입장의 합리화이기 때문이다.

세번이상 보고 쓰기를 권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쓰기전에 세번정도
고민하기 바란다. 한 장면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TV종사자는 다섯번이
상 고뇌하고 열번까지도 NG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