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초, TV외화 '스타스키와 허치'가 큰 인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투캅스'쯤 되는 형사시리즈였다. 정작 내용보다는 더빙을 맡은 성우'
배한성,양지운씨 목소리 연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를 놓칠세라
인기절정 두 성우를 기용해 해태우유 CF를 만들기로 했다.

화면에는 운동회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는 아이들만 등장하고 양지
운, 배한성씨는 목소리만 출연해 아들 자랑에 열을 올리는 내용이었
다. "우리 아들 잘 뛴다" "우리 아들은 해태우유를 먹였다구". 두 성
우 인기와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날렸고, 우유매출이 10%나 늘어나는
기록도 남겼다.

이 CF가 한참 전파를 타면서 "아들만 자식이냐"는 항의가 쏟아졌
다. 여성단체들은 "아들 타령만 하는 남아선호사상의 본보기"라고 몰
아 세워가며 방송중단을 요구했다. 심지어 '딸'편을 찍지않으면 우유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구체적 협박도 있었다.

원래 이 CF는 기획단계에서 우리 '아이' 잘 뛴다로 설정했던 것을,
더빙때 배한성, 양지운씨가 무심코 우리 '아들'로 바꿔 녹음한 게 화
근이었다. 화면에 맞춰가며 더빙하는 순간 화면속에 달리는 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라 '아들'로 바꿨고, 나 역시 타당하다 싶어 별 생각 없
이 진행했던 것이다. 광고주는 결국 '딸'편을 만들었다. 학예회날 무
대에서 재롱을 피우는 여자 아이들, "우리 딸 예쁘다" "우리딸도 해
태우유를 먹였다구…". 똑같은 주제, 똑같은 성우, 바꾼 건 '딸'과
무대뿐이었다. 그러나 이 CF는 소비자 반응을 얻지 못한 채 한달만에
방영을 중단했다. 식상한 소재를 재탕한 게 패인이었다. '딸'편이 나
가면서 항의는 씻은듯 없어졌지만, 매출이 뒤따르지 않아 또 한번 광
고주 속을 끓게 했던 CF였다. 80년대 '남아선호사상'이 문제가 됐던
시대적상황을 기억속에 음미하는 CF이기도 하다.

( 심팩트미디어 감독 ).